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 방안이 19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발표되면서 석탑 복원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탑이 해체되던 2001년부터 석탑의 복원을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 끝에 나온 결론이기 때문이다. 9층이 아닌, 6층으로, 6층 전체가 아닌 부분 복원으로 잠정 결론나기 까지 과정을 살펴보았다.
▲ 해체에서 복원안 결정까지
미륵사지 석탑은 1998년 안전진단결과 구조적 안전이 우려돼 해체 보수가 결정됐고, 전북도와 대행사업 협약을 체결한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1년 해체작업을 시작했다.
6층부터 해체에 들어가 지난해까지 10년에 걸쳐 해체와 발굴 작업을 모두 마쳤다. 현재 석탑은 기초부만 남아있는 상태다.
연구소측은 해체 및 발굴조사 과정에서 상세한 자료를 축적했고, 건축·보존과학·고고학·미술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조사와 연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특히 발굴 과정에서 2009년 석탑 1층 심주석에서 사리장엄이 출토돼 석탑의 창건시기가 서기 639년임을 밝혀내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석탑의 건축재료를 조사한 결과 흙은 미륵사지 주변에서 채집한 양토와 사양토 등으로 구석됐고, 채석산지는 미륵사지 북편으로 믹산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석탑의 붕괴 원인은 밝혀내지 못했다. 연구소측은 지진이나 지반구조의 취약, 석재의 내구성 저항 등을 붕괴원인으로 가정하고 여러 실험을 거쳤으나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다만, 발굴조사과정에서 확인된 초반석의 불균형한 형태나 내구성의 저하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있다고 보았다.
미륵사터 석탑은 조선시대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해 1915년경 서쪽면 전체와 남쪽, 북쪽면 일부가 무너졌고 당시 일제가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해 콘크리트를 덧씌웠다. 원래는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해체 전까지 6층까지만 남았었다.
▲ 왜 6층까지 부분 보수인가
연구소측은 석탑 2층까지 해체한 후 2005년 복원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었으며, 이 때부터 지금까지 △9층 복원 △ 6층 부분복원 △ 6층 전체복원 등의 방안을 놓고 논의해왔다.
연구소는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정비 기본원칙을 국제적으로 문화재 보수·복원의 보편적 기준으로 삼고 있는 '베니스헌장'에 뒀다고 밝혔다. 즉 역사적 가치와 진정성의 회복, 구조적 안전성을 고려했다. 이와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외 석조문화재의 복원 사례를 참고했다.
그 결과 과거의 흔적과 예술적 작품성을 보존하기 위해 보수 정비의 법위를 해체 전 남아있던 6층까지로 정했다.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며 역사적 형태 및 구조적 안전성을 고려해서다.
또 해체조사과정에서 밝혀진 원래의 축조기법과 재료를 반영하되, 기존의 방법으로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과학적 기술에 근거한 방법을 적용한다. 원래의 부재 재사용 비율을 높인다는 것도 기본원칙에 포함됐다.
연구소측은 6층 부분 복원과 전체 복원을 놓고 장단점을 비교한 결과 6층 부분 복원쪽에 손을 들었다.
6층 부분 복원과 전체 복원의 차이는 해체 직전 무너진 6층을 그대로 두느냐, 아니면 무너지기 전 모습으로 복원하느냐의 차이다. 형태적으로나 시각적으로는 전체 복원이 안정적이며, 일반도 선호하는 형태이기는 하지만, 자칫 원형을 6층으로 오인하거나 공사가 중단된 형태로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또 신재료의 증가로 이질감이 커지는 등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연구소측은 보았다.
부분 복원시 기존 재료의 사용률이 62%지만, 전체 복원시에는 기존 재료가 39% 밖에 안된다.
반면 부분 복원시 국제적 보수·복원 원칙을 반영하고, 최소한의 복원으로 후대에게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를 남기며, 석축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할 수 있다고 배병선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은 설명했다.
배 실장은 부분 복원안이 "1915년 콘크리트 보강 공사 이후 거의 100년 가까이 지속된 미륵사 석탑 모습이 될 것"이라며 "그런 까닭에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모습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 형태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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