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족오(三足烏)
우리역사에는 단군시대 왕가와 관련된 벽화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 단군세기에 보면 단군 우세한 8년, 세 발 달린 검은새가 날아와 대궐 뜰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날개넓이가 석자나 되었다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덕흥리 고분과 안악3호분 벽화도에 그려져 있습니다.또 신라, 백제의 유물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
금동투조금구(金銅透彫金具)
1941년 조사 당시 진파리 7호분묘실 내부에서 관모(冠帽)형태의 금동투조금구(金銅透彫金具)가 출토되었다. 중심에 원에 둘러싸인 삼족오(三足烏)와 원둘레에 세마리의 용과 화염문을 투조한 금구로 묘 주인이 높은 신분이었음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벽화의 모사화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
삼족오는 태양속에 살면서 태양의 불길을 먹으며 사는 전설의 새라고 정의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전설의 새에는 절친한 파트너가 있다고 합니다. 그 이름은 두꺼비. 삼족오 나올 땐 반드시 태양이 있구요. 그에 대칭해서 두꺼비가 나오는데 두꺼비 곁에는 달이 묘사된다고 합니다.
|
고대인들이 태양을 보는데 뭐가 꾸물대는 모습이 보였고 그것을 연결해서 상상한 것이 삼족오 입니다. 그런데 그 꾸물대는 것이 뭐냐면 흑점이라는 거죠. 서양에서 태양에 흑점을 처음 발견한 때는 1611년 갈릴레이에 의해서 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양권에서는 이미 기원전 28년 한나라시대때 기록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기원후 640년 고구려 때 흑점에 대한 기록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그 시대때 뭐가 있어 흑점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고대인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삼족오(三足烏)는 한자 표기에서 알 수 있듯이 다리가 셋 달린 검은새를 의미합니다. 고구려인들은 이 삼족오가 태양 속에 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신화와 설화에 나오는 상상속의 동물들이 모두 그렇듯 고구려인들이 왜 하필 다리가 세 개나 달린 검은새가 태양 속에 산다고 믿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고대인들이 태양의 흑점을 보고 다리가 여럿 달린 검은새를 상상했을 것이라는 게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입니다.
태양의 흑점을 관측한 기록은 서양에서는 1611년 갈릴레오 갈릴레이에서 처음 나타납니다. 갈릴레이는 스스로 제작한 망원경을 이용해 태양의 흑점뿐만 아니라 목성의 위성과 토성의 고리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이보다 훨씬 빠른 시기부터 흑점에 대한 기록들이 나타납니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인 기원전 28년부터 흑점을 정확히 묘사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기 640년인 고구려 때부터 흑점과 관련된 표현이 나오고, 고려시대인 1105년에는 흑점에 대한 분명한 기록이 나타납니다. 고려의 흑점 기록은 비슷한 시기 중국 송, 금, 원의 기록보다 훨씬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대 문헌을 찾아보면 우리 조상들은 ‘삼족오’라고만 기술했지, 학자들이 규정하듯이 ‘세 발 달린 까마귀’라고 한 적이 없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삼족오’의 ‘烏’를 ‘까마귀 오’로 오독하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삼족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먼저 이 ‘烏’의 의미를 살필 필요가 있다. ‘烏’는 옥편을 찾아보면 두 가지의 뜻이 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까마귀’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검다’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오골계(烏骨鷄)’, ‘오죽(烏竹)’, ‘오석(烏石)’, ‘오사(烏蛇)’, ‘오옥(烏玉)’, ‘오수정(烏水晶)’, ‘오동(烏銅)’, ‘오금(烏金)’ 등을 이야기할 때 ‘오(烏)’는 ‘까마귀 오’가 아니라 ‘검을 오’로 읽힌다. 오죽(烏竹)을 까마귀오를 한번읽어볼까요. 까마귀대나무가 되네요
‘삼족오(三足烏)’의 ‘오(烏)’도 마찬가지다. ‘까마귀 오’가 아니라 ‘검을 오’로 읽어야 삼족오가 지닌 상징성을 제대로 밝힐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4 「고구려본기 2 太武神王條」 에 보면 ‘烏者黑也’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도 삼족오의 ‘오’가 ‘검을 오’임을 뒷받침한다.
위 삼족오의 그림에 머리부분을 보세요 무었과 닮았다고 생각 하십니까? 까마귀,봉황....
삼족오를 이처럼 까마귀로 읽지 않고 ‘검을 오’로 보아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점이 바로 태양의 흑점과의 관련성이다. 고대인들은 흑점이 태양의 광채가 응어리진 것으로 보고 양(陽)을 상징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동양사상에서 흑색은 오행(五行)의 ‘수(水)’에 해당하고 역괘(易卦)로는 감(坎)이기 때문에 ‘험(險)’을 상징한다.
고대인들은 태양의 흑점 중 그 중앙에 가장 검은 본영(本影)이 세 발 달린 검은 새의 생김새와 같다고 해서 ‘삼족오(三足烏)’라고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삼족오’의 ‘오’가 ‘검은 새’를 지칭하는 것으로 봐야 하는 근거다. 마치 달(月)에 두꺼비와 옥토끼가 산다고 믿은 것과 같은 이치다.
예술가들에 따르면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배경으로 할 경우 어떠한 사물도 검게 보인다. 이 때문에 ‘삼족오’를 ‘세 발 달린 검은 새’로 보고 이렇게 이름을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다 결정적인 증거는 ‘삼족오(三足烏)’가 ‘태양(太陽)’의 이칭(異稱)으로 양(陽)을 상징한다는 점이다. 국어사전에도 ‘삼족오’가 1)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해 속에 산다는 세발 달린 까마귀’라고 잘못 해석하고 있으면서도 2) ‘태양을 달리 일컫는 말’이라고 해서 삼족오가 바로 태양을 상징함을 보여주고 있다.삼족오의 머리를 살펴보면 봉황의 그림과 비슷하다 까마귀와는 전혀 다른모습아다.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 ‘검을 오(烏)’가 들어가면 ‘태양’을 상징하는 단어들이 많다. ‘일오(日烏)’, ‘금오(金烏)’, ‘직오(織烏)’, ‘현오(玄烏)’, ‘준오(?烏)’가 그렇다. 특히 이 가운데 ‘금오(金烏)’와 ‘준오(?烏)’는 ‘삼족오(三足烏)’의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고대인들은 자신들이 태양의 후손이라는 뜻에서 태양 안에 삼족오를 그려 넣어 자신들의 문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민족이 바로 고조선의 뒤를 이은 고구려다.
또, 태양에서 날아오는 하전물질이 지구 전리층을 교란시켜 통신장애가 일어나는 델린저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흑점의 크기는 작게는 지름 수 킬로미터에서 크게는 지구가 몇 개 들어가고도 남을 만한 것까지 다양합니다. 작은 것은 망원경이 있어야 관측할 수 있지만, 큰 것들은 동틀 무렵이나 해질 무렵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고대인들이 특수한 장비 없이도 흑점을 관측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흥미 있는 점은 우리 역사에는 흑점뿐만 아니라 태양의 활동을 기록한 다양한 자료가 남아 있다는 겁니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3년인 기원전 35년 ‘골령의 남쪽에 신비로운 빛이 나타났는데 그 빛이 푸르고 붉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오로라를 묘사한 기록입니다. 이후 조선 중기까지 우리 역사에는 모두 7백여 개에 이르는 오로라 기록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단일 국가에 남아 있는 오로라 기록으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이 많은 것입니다. 정확도도 육안으로 관측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높습니다. 실제로 고려의 흑점 기록을 살펴보면 기록의 수가 약 11년을 주기로 증감해 서양 천문학이 밝힌 흑점의 주기와 일치합니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천문을 관측하고 기록했던 조상들의 마음가짐은 당시 문헌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고려사 천문지’는 앞머리에 천문지를 펴내는 까닭을 밝히며 다음과 같이 주역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그 표시한 징상에 의해 길흉을 나타내는 바 어진 사람은 이것을 본받는다.” 우리 고대사의 왕조들은 이웃 나라들에 비해 존속기간이 길었고 천문관측이 중요 관청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져 정확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들 기록은 오늘날에도 태양과 지자기 등의 장주기 변화를 연구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역사이야기 > 고대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한국의 3천년전 절구공이 -> 일본으로 전파 (0) | 2012.05.06 |
---|---|
[스크랩] 일본천황가가 애타게 섬기는 민족 `한신’(韓神) (0) | 2012.04.29 |
[스크랩] Re: 원래, `일본 조상들이 일본해라고 부른 바다는 바로 태평양` (0) | 2012.04.22 |
[스크랩] 조선군의 실체 (0) | 2012.04.03 |
[스크랩] 백제-일본 왕실 혈연 실체 발굴 (0) | 2012.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