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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몽의역사(일본천황,무사)

lionet 2015. 9. 28. 02:24
빨간모자 : 주몽의 진짜 족보를 알켜줄게 - 천황도 무사도 한국인? [4]
1916| 2006-08-07 추천 : 2| 조회 : 520

 

여덟번째 포인트 : 일본 천황 뿐 아니라 어지간한 유력가문은 다 한국계라면서?

 

주몽 족보와는 별 상관없지만, 민족사의 진실을 밝히는 차원에서

일본 무사가문에 대해 서술해준다.

 

일본 유력 성씨는 후지와라씨, 다이라씨, 미나모토씨의 3성씨를 들 수 있다.

나중에 나오는 오다 노무나가나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의 뿌리도 다 여기에 있다.


우선 후지와라씨... 앞서 말한 고구려 평원왕의 막내 왕자인 태양이 일본에 건너가  나카도미노 가마티리(중신겸족)라는 이름으로 다이카 개신을 이루고 하사받은 성씨가 바로 후지와라다. 누군지 모르겠거덩 인터넷 검색창에 후지와라노 가마타리라고 쳐보기 바란다. 일부 철없는 애들은 이 후지와라씨가 백제계이며 너무 권세를 부리다가 대해인(덴무천황)에게 죽었다고 떠드는데 그건 후지와라씨가 아니라 소가씨 이야기이며 대해인이 아닌 중대형왕자(덴지천황)와 가마타리(태양왕자)에게 죽은 거다.


이 후지와라씨는 계속 왕비를 배출하며 섭정정치를 통해 500년간 영화를 누린다. 어찌나 호화롭게 살았던지 이들 덕분에 일본의 귀족문화가 꽃피우게 된다. 문제는 천황가였다. 워낙에 백제기득권의 아성이 강하여 후지와라씨도 백제계인 양~ 하며 살기는 했지만 뿌리를 더듬으면 엄연히 고구려계.. 근데 왕비배출을 이 후지와라씨가 독점하다보니 영원한 조국인 백제의 색채가 점점 옅어지는 것이었다... 소위 말하는 일본의 고유문화라는거 별거 아니다. 백제의 화려함에 고구려의 웅장함이 가미된 양식이고 여기에 당나라 문화까지 섞인 것이다.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고구려 문화를 알고 싶으면 6~12세기 일본 문화재에서 백제적 요소와 당나라적 요소를 뺀 부분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얼마전 일본천황이 환무천황을 들먹이며 환무천황의 엄마가 백제계라서 친근감을 느끼고 어쩌구 하던데 좀 생뚱맞지 않던가? 원래부터 백제계인데 왜 9세기 초의 환무천황만 이야기하는걸까? 왜냐하면 거의 유일하게 고구려계인 후지와라씨 가문이 아닌 토종백제계 여인이 낳은 천황이 환무천황이기 때문이었다.


이 50대 환무천황에서 52대 사가천황에 아르는 시기가 천황을 압도하는 후지와라씨를 견제하고 왕권을 늘리려고 몸부림치던 시기인데 환무천황과 사가천황이 친 사고가 바로 다이라씨 (平씨=헤이케)와 미나모토씨 (原씨=겐지)였다.


헤이케 즉 다이라씨는 환무천황이 다섯째 아들에게 내려준 성씨이고

겐지 즉 미나모토씨는 사가천황이 왕자, 왕녀에게 내려준 성씨이다.


일본 최초의 막부인 가마쿠라 막부를 열어제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요시츠네 형제 알쥐?

얘들이랑 대립했던 세력이 바로 다이라노 기요모리 등 헤이케 가문이었고...

한마디로 후지와라씨의 귀족정치를 이어 무사정권을 탄생시킨 것이 바로 이 다이라씨와 미나모토씨였던 것이다.

천황의 혈통이니 당연히 한국계라고 할 수 있고..


다만 순수 백제계였던 환무천황에서 분파된 다이라씨는 당연히 백제계와 친했고

사가천황에서 분파된 미나모토씨는 고구려계인 후지와라씨랑 친했었다. 고구려계라고 해도 이때쯤 되면 그냥 백제계에 가깝기는 하지만..


어쨌든 후지와라씨가 몰락하고 다이라씨와 미나모토씨의 한판 싸움에서 미나모토씨가 승리를 거두게 되고 가마쿠라 막부를 세우게 되는데 이 가마쿠라 막부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마누라인 호죠씨 가문이 찬탈해 버린다. 여몽 연합군이 쳐들어갔다가 카미카제로 익사했던 때가 바로 이 호죠씨의 가마쿠라 막부 시대였다. 가마쿠라 막부가 망한 후 무로마치 막부를 세운 아시카가씨도 미나모토씨에서 분파된 가문이다. 이 아시카가 가문 말기가 그 유명한 일본의 전국시대인데 이 때 나온 내노라하는 다이묘들의 대부분이 호죠나 미나모토, 다이라씨의 분파라고 보면 된다.


오다 노부나가는 다이라씨의 방계 가문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뿌리는 미나모토씨다. 왜 성이 다르냐고? 그게 일본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원래는 마츠다이라씨였다가 나중에 바꾼거지.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생뚱맞게 풍신수길을 평수길로 호칭한다. 그 외에도 어지간한 일본인은 죄다 그냥 평씨라고 부른다. 왜그랬을까? 우선 첫째로 평씨 그러니까 다이라씨의 권세가 짧지만 굵었기 때문이었다. 미나모토씨에게 밀렸다고는 했지만 다이라씨만큼 외국에 알려지게 위세를 부린 가문이 또 없었다. 오죽하면 다이라씨가 아니면 사람도 아니라는 말까지 있었을까.


둘째로 풍신수길 스스로 다이라씨를 자칭하기도 했다. 풍신수길은 원래 족보도 없는 미천한 출신이다. 그러다가 오다 노부나가의 눈에 들어 출세가도를 달리고 결국 오다가의 가업을 계승하여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지. 그러다보니 오다 가문처럼 다이라씨의 방계 혈통이라고 구라를 쳤던거다. 그런 탓에 조선에도 평수길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뭐 이때쯤 되면 지들이 백제 기원인지 고구려 기원인지를 따지지는 않게 되었지만, 그게 또 꼭 그런것은 아니다.

무슨 소리인가하면, 메이지 유신 이후 정권을 거의 독점하며 결국 한국을 병합한 사쓰마번 죠슈번을 살펴보잔 말이다.

사쓰마번은 시마즈 가문, 죠슈번은 모리 가문의 나라였다. 그런데 이 시마즈, 모리 가문이 미나모토, 다이라, 후지와라 등

한국계 유력성씨와 상관없는 그야말로 자수성가한 가문이었다. 왠만한 다이묘는 죄다 저 성씨에 속하는 판에 그렇게 관계없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참고로 사쓰마번은 정한론을 주장한 사이고 다카모리를 배출했고, 죠수번은 이토 히로부미를 배출한 번이다. 훗날 사쓰마는 해군, 죠슈는 육군을 독점하며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주도한다.


출신도 불분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미나모토, 다이라, 후지와라 등 백제/고구려계 천황가에서 파생된 유력성씨와 동떨어진 시마즈, 모리씨의 후예... 

조선과 국교를 맺으며 우호관계를 계속한 미나모토 씨의 후예인 도쿠가와 막부와는 너무 대조되는 모습 아니던가?


시마즈, 모리의 사쓰마, 죠슈번 출신 군벌들의 광란으로 결국 원자폭탄을 맞게 된 일본...

그리고 이 A급 전범들에 대한 불쾌감을 표시하며 야스쿠니 참배를 거부했던 천황...

이게 과연 우연이라고 보여지는가?


본인들이 의식을 하던, 하지 않던 이렇게 피라는게 무서운 것이다

출처 : 순천만
글쓴이 : 권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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