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기타정치역사

[스크랩] 노무현의 업적-이 정도는 계승할 거리도 안 되는 업적이지만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하여

lionet 2015. 11. 12. 12:37

1.이러한 노무현 정부, 조중동은 뉴스에 내지도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친일매국노 정권이 아닌 정권은 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 뿐이였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친일매국노 종자들이 정치,경제,사회,언론을 모두 지배하고 있습니다

친일파 신문 조중동에 쇄뇌된 50% 국민들 이래서 김대중,노무현을 미워하는 겁니다

"도대체 노무현이 한 게 뭔데? 노무현이 나라 말아먹고 있어"조중동이 참여정부 때 지저귀는 소리였습니다.

*경제 성장률 5%를 달성한 최초의 노무현 대통령

*신용불량자 600만명,개인회생 제도로 임기 8개월에 100만명 회생시킨 최초의 노무현 대통령

*공약 이행률 45%를 달성한 최초의 노무현대통령

*국가신용도 fitch사의 전망도를 A+를 달성한 최초의 노무현대통령

*수출 51개월 연속흑자를 기록하며 500억불 수준에서 3200억불 달성한 최초의 노무현대통령

*소비자 물가 상승률 평균 3.0%를 달성한 최초의 노무현대통령

*부도업체수를 20000개 에서 2000개 수준으로 급락 시킨 최초의 노무현대통령

*국가정보화 및 인터넷 보급 수준을 세계 1위 수준으로 발전 시킨 최초의 노무현대통령

*연구 개발비 예산이 6조원 수준이던 것을 24조원 수준으로 격상시킨 최초의 노무현대통령

*문화기반시설 800개소에 불과하던 것을 1600개소로 확충시킨 최초의 노무현대통령

*종합주가지수 800대에서 2500대로 격상시킨 최초의 노무현대통령

*국내전체제조업체 현금보유비중을 6%대 에서 10%로 끌어올린 최초의 노무현대통령

*수출 600억대 수준을 3200억불 으로 격상시킨 최초의 노무현대통령

*암환자 건강보험 보장률을 40%대에서 70%로 격상시킨 최초의 노무현대통령

*외환보유액 500억불 에서 3200억불 달성한 최초의 노무현대통령

*주택 보급률을 60%대 에서 105%로 격상시킨 최초의 노무현대통령

*육아지원예산을 1000억원 에서 1조원으로 격상시킨 최초의 노무현대통령

*남북 인적 왕래수를 16000명에서 10만명으로 격상시킨 최초의 대통령

*복지지출추이를 17%에서 27% 이상 격상시킨 최초의 노무현대통령

*국제특허출원 건수를 2900건에서 4600건으로 격상시킨 최초의 노무현대통령

*대한강국 2020 계획을 세워 전투력 1.8 향상 모병제 확립 하려던 최초의 노무현대통령

 

2.천연가스 채굴권

노무현 대통령이 푸틴대통령과 천연가스 채굴권에 대해 협상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러시아 언론에서 푸틴대통령 질타 단계적으로 가스배관 한국까지 연결 (2004년 9월)

아시아 동쪽의 코딱지만한 나라의 못생긴 대통령이 세계 제일의 강국 러시아 푸틴과 협상을 해서( 미국와 협상할 때도 거들먹거리던 푸틴이 노무현 대통령과 협상할때는 굽신거렸습니다 )

대한민국 국민이 평생 사용하고도 남을 만큼의 가스를 확보한것에 대해 러시아 언론은 들썩거렸으나 대한민국 찌라시는 역시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당시 조중동,등 수구 신문들은 위와 같은 사실을 기고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 수구 언론들은 이명박 정권때 현정권이 해낸 것이라며 언론은 퍼트립니다.

 

3.모기지론 사태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지금 전세계가 휘청거리는데 금융이 취약한 우리나라는 영향이 덜하지요.

놀랍지 않으신가요?미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 경제는 페렴에 걸린다고 하죠

비록 집값 상승은 못막았지만 서민들이 무리하게 대출받아 집사는건 예방했지요

대출규제란 것이 참 인기없는 정책이랍니다 내집 마련이 소원인 사람들한텐 노무현 대통령은 웬수였죠

그 당시 국민들에게도 엄청난 반발을 샀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민들이 무리한 대출(모기지론)을 받아 집값 상승랠리에 빠지는 상황은 막았습니다

그나마 그 과실은 이명박이 누리겠네요 언론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 모기지론사태

 

4.대통령특별교부금 (5년 총 6조 전부 사회 환원)

노무현 대통령은 소위 통치자금이라고 하는"대통령특별교부금"을 국가사업 필요한 행정기관에 내놓았습니다
이 돈은 오로지 대통령 재량에 달려있는 자금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 24일 행정자치부에 대한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특별교부금을 폐지해 보통교부금에 흡수하는등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습니다.노 대통령은 당시 “특별교부금은 원칙 없이 정치적 선심사업에 사용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특별교부금의 배분기준을 재검토해 자의적으로 사용될 여지가 없도록 개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노 대통령도 특별교부금이 권력층의 쌈짓돈처럼 사용돼 왔다는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특별교부금 제도는 폐지되지 않고 규모와 운용방법등만 조금씩 변해왔습니다.

2003∼2004년에는 1조원이 넘던 특별교부금 규모가 2005년부터는 7000억원대로 축소됐고 사용용도도

재해대책비와 특정현안비로 단순화됐습니다.지난해 하반기부터는 특별교부금이 도로 개설 등 지역개발보다는 사회복지·문화사업에 집중 지원되도록 했고 심사와 사후관리도 강화했습니다."결국, 그 돈은 2003년 태풍 매미 피해가 났을때 그 돈으로 복구사업비로 사용했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자신은 단 한푼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 마음대로 사용 할 수 있는 1조원 넘는 돈을 국민들의 피해보상에 사용하게 지시를 한 그가...그리고 퇴임후 집 한채 지을 돈이 없어서 자신의 후원 기업인에게 돈을 빌린 것이 매스컴에 부패의 화신으로 둔갑 기사화 되었습니다.

재임중 많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언론, 국민 그 누구도 귀 기울여 주지 않았습니다.

국민은 언론으로부터 왜곡된 정보만 들었던 허수아비에 불과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바보가 아닌 국민인 우리 모두가 바보였습니다.

살아 생전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훗날 "역사가 나를 평가해 줄 것이다" 는 유언을 남기고 가셨습니다.더이상 같은 과오를 다시는 범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총평. 노무현 정부의 5년 동안의 성과와 한계를 살펴보자.

 

노무현 정부는 외교에선 동북아 균형자를 표방하여 전임 김대중에 이어 한반도 주변 정세의 안정적 관리에 기여하였다. 네오콘에 둘러싸인 깡패 부시정권의 압박에도 그 기조는 끝내 유지되어 2007년 10.04 남북정상선언으로 그 결실을 맺었다. 국방에서도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는 개념을 넘어서서 동북아의 정세를 주도할 군사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국방예산을 매년 8% 인상하여 자체무기 개발에 주력하였다.

 

내치에선 절차적 민주주의의 교본이라 할 만큼의 철저한 법치주의를 확립했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 범위 안에서 법적 절차에 따라서 그 권한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사용하여 권위주의 타파와 수평적 토론 문화의 사회적 정착에 기여했다. 그야말로 인터넷 논객의 전성시대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는 신행정수도 이전과 지방화 전략으로 추진한 기업도시 혁신도시의 지방분산 배치다. 이로써 오랜 수도권-영남 중심의 발전전략은 국토균형발전 전략에 따라 지역균형 발전의 전기를 가져왔으며 이로써 수구 기득권 세력의 물적 토대인 부동산 투기의 근거와 영남패권의 축이 허물어지고 있다.

 

그 한계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퇴임 후 노무현 자신도 지적했듯이 비록 한계 계층에 대한 복지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종부세 신설로 지자체의 복지사업 확충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지만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등 자본과 맞서는 노동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흡하고 임시적 처방에 급급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이 임기 내내 신자유주의라고 비판 받고 유시민과 문재인도 나서서 인정하고 사과하는 참여정부의 극복해야할 한계지점이다. 이렇게 누구나 다 알법한 성과와 한계를 정리했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는 노무현의 최대 업적은 따로 있다.  

 

그의 중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이런 평문이 있다. “총명하고 통솔력이 있으나 비타협적인 성격이다.” 노무현은 평생 비타협적으로 싸웠다. 숙명 같은 가난의 굴레와 싸우고 싸워서 잘 나가는 세무전문 변호사가 되었다. 정치에 입문한 이후에는 수구 기득권 세력이 키운 ‘지역주의 망령’이란 괴물과 모든 걸 던지고 투쟁했다.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선 온갖 궁물들의 기회주의적 반칙에 맞서 대결했다. 대통령이 돼서는 수구세력 전체와 건곤일척 양보 없는 전쟁을 벌였다. 몇 번의 실패와 좌절은 있었지만 결코 항복하지도 후퇴하지도 않고 국민의 위임권력을 수호하며 국민이 명한 전장의 최전선을 지켰다. 그리고 퇴임 후 마지막 운명을 건 싸움에서도 그는 끝끝내 타협하지 않고 자신에 투영된 국민의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표표히 생의 본능마저도 던져버렸다.  

 

노무현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설치류 정권의 하이에나들이 계획한 은팔찌를 채워 죄수복을 입혀 감방에 가두고 능욕하려는 시나리오는 실연되지 못했다. 그들의 조소는 공포로 변했고 아들을 잃은 국민은 부모된 심정으로 그의 마지막을 애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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