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에서 'BMW 드라이버 트레이닝' 훈련에 참가했다. BMW는 1977년, 세계에서 최초로 운전자 훈련을 실시한 자동차
제조사다. 매년 15000명 이상의 운전자가 BMW드라이버트레이닝센터에서 운전을 배워 나간다. 지금까지 총 25만명이 BMW로부터
운전을 배웠다.
'BMW 드라이버 트레이닝'은 차를 안전하게 운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반일짜리
기본 프로그램부터 유럽 뉘르부르크링에서 2일을 꼬박 달리며 레이서 못지 않은 스킬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아프리카
나미비아공화국에서 본격적인 오프로드를 달리는 8일짜리 코스까지 다양하다.
이 번엔 연비 운전을 위한 '이코노미컬 드라이빙(Economical Driving)' 훈련을 받았다. BMW와 연비운전이라니 마치 두 단어가 충돌하는 느낌이었지만, BMW측은 '연비운전'이 '다이내믹'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고 말했다. 연비운전을 하면서도 충분히 역동적으로 주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드라이빙의 재미를 강조하는 BMW가 내놓는 연비 운전 비결이라니,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기 위해 훈련에 집중했다.
◆ '블랙박스' 이용해 연비, 운전 실력 모두 기록
연비 운전 훈련을 위해 사용된 차는 BMW 준중형 스포츠세단인 330i로 3.0리터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수동변속기 차량이다. 이 차의 자동변속기 모델은 국내서 공인 연비 9.2km/l에 불과할 정도로 연비가 좋지 못하다.
이 차에는 블랙박스가 장착돼 각 운전자의 운전방법과 습관을 그대로 기록한다. 주행이 끝나면 가속페달을 얼마나 밟았는지, 기어는 몇단을 이용했는지, RPM은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상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된다. '블랙박스'라고는 하지만 차에 장치된 박스는 흰색이었다.
"연비 운전의 기본은 알고 있겠죠?" 랠리 레이서 출신이라는 오스트리아인 강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물어본다. 더듬더듬 거리며 가속페달, 브레이크 페달은 덜 밟고, 기어를 빨리 변속하면서 천천히 운전하는 것이라 답했지만 그는 웃기만 했다. 만족하지 못한 눈치다. 그거 말고 뭐가 더 있나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달리 떠오르지 않는다.
도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자연환경이 아름답게 가꿔진 도로가 뻗어 있다.
▲ 도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자연환경이 아름답게 가꿔진 도로가 뻗어 있다. |
간 만에 다뤄보는 수동변속기가 조금 생소했지만 달리다보니 이내 기분이 좋아진다. BMW의 자동변속기는 수동 못지 않은 직결감이 매력적이지만, 수동 변속기는 그 수준을 넘어 마치 강철로 연결한 듯하다. 무게도 더 가볍고 연비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계기반 화면에 평균 연비가 나타나도록 해놓고 최적의 연비가 되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살금살금 운전했다.
약 38분 동안 39km를 달린 후 블랙박스를 조사해보니, 연료는 총 2.8리터를 사용했다. 3.0리터 차로 13.8km/l의 연비를 기록한 셈이다. 원래 연비 운전에 소질이 좀 있는데다 독일의 도로환경이 서울에 비해선 훨씬 나은편이어서 연비가 비교적 잘 나왔다. 도로 상당수가 신호등 대신 로터리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서 멈춰서지 않고 달릴 수 있던 것도 한 몫했다. 함께 참가한 다른 운전자들에 비해서도 월등히 우수한 수준이어서 이보다 더 나은 연비가 나오는건 불가능해보였다. 하지만 BMW의 오스트리아인 강사는 일단 BMW의 '연비향상 비법'을 교육한 후 다시 한번 같은 길을 달려보자고 했다.
◆ BMW가 공개한 '연비운전 비법'
당 연한 얘기지만 일반적인 연비 운전 방법이 먼저 설명됐다. 우선 서비스 주기를 잘 지키라고 했다. 특히 타이어 공기압은 연비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의해 살펴야 한다고 했다. 트렁크도 자주 관리해야 한다. 짐 100kg이 실리면 연비가 즉각 3%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어 BMW가 말하는 '연비 운전 비결'이 몇가지 더 있었다. 이중 일부는 기존의 상식과 크게 달라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1. 워밍업을 하지 말고 바로 출발할 것 - 최신 차종들은 워밍업이 불필요하다.
2. 멀리 내다보고 균형있게 운전할 것(교통신호와 교통의 흐름을 잘 살펴볼 것) - 속도를 얼마나 줄여야 할지에 따라 가속페달을 일찍 떼거나 혹은 기어를 중립으로 옮기는 방식을 선택할 것.
3. 온보드컴퓨터를 통해 순간연비와 변속 시점을 계속 살펴볼 것.
4. 가속페달에서 발을 보다 일찍 뗄 것 - 브레이크를 밟는 대신 퓨얼컷을 이용해서 감속할 것.
5. 신호대기나 교통정체시 시동을 끌 것 - 스타트앤스톱 기능을 활용.
6. 높은 기어를 넣고 강하게 가속할것 - 가속할 때 평소보다 더 높은 기어를 이용하고 가속페달은 2/3 가량만 밟을 것
7. 50km/h에서 100km/h로 가속할 때 3단기어보다 5단 기어를 이용하면 연비 10%가 향상된다.
가 속페달에서 밟을 먼저 떼 연료 공급이 끊기도록 하는 '퓨얼컷'을 이용하는 것은 기본적인 기술에 속했다. 강사는 연비 운전을 위해 더 빠르게 가속 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도 내놨다. BMW 자료에 따르면 빠르게 가속하면 높은 기어를 빨리 이용할 수 있고 더 쉽게 연비가 향상된다고 한다.
연비 운전을 위해 주행 중 기어를 중립으로 옮기라는 설명은 워낙 급진적이어어서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잠시 옥신각신 토론이 이어졌다. 기어를 중립에 넣지 않아야 발생하는 '퓨얼컷'을 강조하던 기존의 연비 운전 방식과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BMW의 강사는 기어를 중립으로 옮기지 않으면 퓨얼컷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엔진브레이크로 인해 차가 금방 감속돼 다시 가속페달을 밟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예를들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빠져나가야 하는 진출로가 1km뒤에 있다면 퓨얼컷 대신 변속기를 중립으로 놓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자동변속기 또한 달리며 기어노브를 중립(N) 모드로 옮기거나 드라이브(D)모드로 옮기는 방식으로 주행하면 연비운전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자동변속기의 D와 N사이는 별다른 조작없이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것도 이런 이유인 듯 했다.
신 호대기 중 시동을 꺼야 한다는 점도 일반적인 연비 운전 상식과 달랐다. 일반적으로는 재시동시 연료가 소비되기 때문에 시동을 끄지 않는 것이 유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신 자동차들은 재시동에 그리 많은 연료를 소비하지 않기 때문에 시동을 수시로 끄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났다는 설명이다.
◆ 좋은 차를 만드는건 두번째, 운전자들이 발전하는게 첫번째
연 비 운전 교육을 받은 후 다시 운전에 나섰다. 1단-2단을 거쳐 3단을 거치지 않고 바로 5단으로 점프했다. 차가 약 시속 80km 이상으로 달리게 되면 다시 기어를 변속했다. 전방을 살펴 앞으로 1km 이후에 감속을 해야 할 것 같으면 중립을 넣고 관성 주행을 했고, 1km 이내에서 감속을 해야 할 것 같으면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고 퓨얼컷을 이용했다. 머리 속에서는 이상적인 주행방법을 그렸지만, 실제로는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좀 더 익숙해져야 할 것 같았다.
빨간색이 이전의 주행 형태, 파란색은 이후의 주행 형태다. 아래 그래프 중 'Leerl'이 중립을 뜻하는 것이다.
원래 극단적인 연비운전을 해왔기 때문에 두번째 주행이라고 큰 향상은 없을듯 했지만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5.9% 가량 연비 향상이 이뤄졌다. 3.0리터 차라고는 믿기 힘든 14.7km/l의 연비다.
블 랙박스의 내용을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니 속도는 오히려 이전에 비해 좀 빨라졌다. 역시 1단 2단만 사용하고 바로 6단으로 올렸던 것이 효과를 봤다. 엔진회전수(RPM)은 극단적으로 낮게 활용했고, 브레이크도 훨씬 적게 이용했다. 이대로 운전하면 서울에 있는 2.0리터 자동변속기 차량의 연비는 이보다 더 높은 연비를 낼 수 있을 듯 했다. (실제 서울에서 주행해보니 연비는 13km/l 정도가 됐다)
오스트리아인 강사는 BMW가 이같은 교육시스템을 만든 이유에 대해 도로, 차, 운전자가 하나로 뭉쳐 교통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BMW는 단순히 차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더 나은 교통을 위해 노력하는 회사라는 것이다. 환경을 위해선 차를 잘 만들어야 할 뿐 아니라 운전자도 차를 잘 운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수십개의 BMW 드라이빙 스쿨에 대해 설명을 마치더니 한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어떤 드라이빙 스쿨을 운영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순간 혼잡한 한국의 도로가 떠오르며 얼굴이 붉어졌다.
/whynot@top-rider.com 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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