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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본 전통우산은 형태도 특이하고 정말 예쁜 것 같아 일본 우산쨔응

lionet 2012. 2. 2. 17:00

 

 

 

 

이 그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나처럼 예쁘다?

ㅇㅇㅋ........ㅈㅅ

 

 

저 아이들의 손에 들린 우산이 보이시나요?

일본 우산의 종류로는

 

반가사

-일반적인 우천용 일본전통우산입니다

옛날 상가 등에서 분실되지 않도록 겉에 번호를 써 두고 손님에게 빌려주었던 데서 비롯된 명칭

이라는 설과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판에 눌러 넣었기 때문이라는 2가지 설이 있습니다.

 

 

에도시대의 풍속화(浮世絵)가 들어간 쟈노메가사

-감색,빨강,검정 등의 바탕에 희고 굵은 고리 모양의 무늬가 든 종이 우산입니다

우산을 펼쳤을 떄 둥글게 보이는 흰 바탕의 고리가 큰 뱀의 눈을 떠올리게 한다고 하여 붙은

명칭입니다

 

 

부요가사

원래는 일본 무영의 연습우산이지만, 양산이나 인테리어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히가사

히가사

우천용이 아닌 양산입니다.

 

등이 있습니다. 독특하고 매력있는 일본 전통 우산들이죠 그렇습니다 네.......그럼 안녕........

 

 

 

 

 

 

 

 

이 아니라......

 

 

 

 

 

 

 

그런데 이 우산이 고유한 일본만의 전통 우산일까요?

 

 

 

 

난 얼마전 까지만 해도 이게 일본만의 고유한 전통 우산인 줄 알았어ㅋ...ㅈㅅ

그래서 나같은 언니들을 위해 내가 찾아보았음

 

 

이런 형태의 모양을 가진 우산을 우리나라에선 지우산이나 기름종이 우산이라고 한다.

 

 

 

   

 

 

 

지우산의 유래

 

지우산은 본래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대나 나무막대 모양의 자루를 중심으로 하여
대오리로 만든 가는 살을 방사상으로 돌려 박고 겉에는 들기름으로 결은 유지를 발라
개폐할 수 있게 만들었다. 헝겊 우산과 겸용하였는데, 값이 싸고 가벼운 반면 바람에
견디지 못하는 단점이 있어 한동안 쓰지 않다가 비닐이 보급되면서 유지 대신에 비닐을 발라서 비닐 우산으로 개조하였다.
[출처] 우산 [雨傘, umbrella ] | 네이버 백과사전


 

중국에서 우산의 역사는 오래되였다. <사기,제왕기>를 찾아보면 그 유래를 알수가 있다.알려진데
 의하면 최초의 우산은 춘추시대 저명한 건축가 로반(魯班)의 아내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하지만
 그 당시만 하여도 우산은 실크를 이용하여 만들었기때문에 귀족들의 사치품일뿐 백성들은 보기조차도
 힘들었다고 한다.한나라때 중국사람은 실크대신 종이에 기름을 발라 렴가의 종이 우산을 발명하였다.후에
당송시기에서야 비로서 종이우산도 보급화가 되여 백성들도 우산을 이용할수 있게 되였다.명청시기때에는
중국사람들은 각종 꽃무늬를 우산에 장식하여 명절에 쓰고 다니군 하였다.


 본 세기 30년대 중국인은 또 세계 최초로 접을수 있는 우산을 발명하였다.지금까지 우산을 살펴보면 처음
 실크우산에서 종이우산,천우산,나일론우산,섬유우산,자동우산까지 발전하였으며 우산중봉도 처음 대나무 혹은
나무를 사용하던것이 지금 스텔,늄,플라스틱,카본등등까지 이용하게 되였다.

 중국우산은 일찍 당나라때 이미 일본과 동남아나라에 전해졌다.18세기중엽에 이르러서야 최초로 영국에 전해졌
고 후에 다른 여러유럽국가와 세계각지에 전해졌다. 당시 중국의 실크우산은 인기가  높아 유렵여러 왕국귀족들은
신분표시로 삼고 외출할 때 항상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하지만 그때 하나의 우산 무게가 무려 4.5킬로,가지고 다니기
는 불편한점도 없지않냐싶다.19세기후부터 우산모양은 변하기 시작하여 점차 작고 접을수있고 외출할때갇고 다니기
편리한 우산으로 바뀌였다.귀족들은 자기 우산에 기털을 달거나 아름다운 꽃무늬로 장식을 가하여 눈이 부실정도로 화
려한 우산들이 나타나였다. 지금도 그 문화는 우리들의 몸에 배여있다고 할수있다.

 

동양에서는 우산은 마제라고 하는 목적으로 귀인에게 씌우는 천개(접히지 않는 우산)로서 고대 중국에서 발명되었고, 그 후 5
52년 불교의 의식용 도구로서 백제에 전래되었고, 흠아키라 천황 13년(552해)에 백제의 성명왕의 기부에 의해 돈의 불상,불교서 등과 함께 뚜껑'(비단양산) 이 일본에 해졌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뚜껑'은 목제의 뼈에 옷감(비단)을 친 자

 루가 긴 일산으로, 귀족이나 승려들이 양산으로 사용하였고, 또 이것은 권위를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대나무 뼈대에 일본종이나 비단천등을 풀로 붙여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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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존나 길어 대충 이런 설들이 있음

요약하자면 중국에서 지우산이 발명되어서 한국 일본 동남아 등등등등등등으로 퍼져나갔다는거임

 

 

 

 

근데 왜 우리나라를 보면 옛 민화들이나 사극들을 봐도 지우산을 쓰고 다닌 모습은 한 번도 못본거 같지?

우리 선조님들은 지우산을 그리 애용하지 않으셨음 대신 일산이나 갈모라고 불리는 우산 대용품등을 사용하셨어

지우산 따위!!!!가 아니라 아마 더 편한것이 있어서 그러셨던게 아니었을까 

 

 

 

 

ㅇㅏ...ㅋ...일산은 우산임 ㅈㅅ갈모만 쓰면 없어보여서

 

 

 

일산에 대해

 

 

 

한국의 일산(日傘)은 왕 이하 상류층만이 썼는데, 양산을 겸한 의례용이었다.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일산은 시녀가 뒤에서 앞에 가는 상전을 씌워주는 것이어서 대가 매우 길다. 고려 때에는 장양항우산(張良項羽傘)이 있었는데, 양산과 우산을 겸한 것으로 벼슬아치만이 외출할 때 썼고,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처럼 벼슬아치만이 일산을 썼다.

 

볕을 가리기 위한 큰 비단 양산. 의장(儀仗)의 한가지로 산(傘)이나 개(蓋)라고도 쓴다. 계급에 따라 그 색과 형태가 다르다.
삼국시대 전에도 일산은 있었을 것이나 삼국시대 고분벽화에 처음 보인다. 수산리고분벽화를 보면 주인공과 귀부인의 뒤를 시녀가 일산을 들고 따라가고 있다.

이 일산은 자루가 위쪽에서 꺾인 곡산(曲傘)으로 사람의 머리가 일산의 중앙부에 오도록 씌울 수 있는 것이다. 통구12호분의
여인행렬도에는 앞의 여인이 혼자서 일산을 들고 행진하고 있는 장면이 있다. 덕흥리고분의 전실 동측 천장벽화에는 남자가
일산을 들고 가는 장면이 있는데 일산의 중앙 꼭대기와 각 귀퉁이에 짙은 색칠이 되어 있다.

이상의 일산은 현대의 우산과 같이 장식이 없고 간단하다. 통일신라시대에도 일산을 썼을 것임에 틀림이 없으나 기록이나
 그림이 없다. ≪고려사≫에 기록된 의종 때에 상정한 대례·대조회 때의 의장을 보면 대관전의 조회·절일·정월·동지·가례에는
 전정(殿庭)에서 의식을 치르는 데 대산과 양산이 쓰였다.

또 중동팔관회(仲冬八關會) 노부의장(鹵簿儀仗)에는, “4월부터 8월까지 관리들이 사모만을 쓰면 열기가 목에 닿아 고생이 심하므로 양 부는 중첨청색(重詹靑色) 개를 쓴다. 6부판서·대언반주(代言班主)·통헌산기(通憲散騎) 이상은 단첨청색 개를 쓰고, 대성(臺省)은 평첨조개를 쓰고, 3품은 원선(圓扇)을 쓴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상의 대산·양산·협산·개는 일산을 말하며 계급에 따라 색과 형태가 달랐다. 고려시대의 일산은 그림이 남아 있지 않아서 그
형태를 알 수 없다. 조선시대의 노부의식은 ≪국조오례의≫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의장반차도 儀仗班次圖〉에도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 보이는 일산으로는 홍개·청개·황개가 있다. 대한제국 〈동가도 動駕圖〉에도 청산·홍산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나타난 일산의 형태는 햇볕을 가릴 수 있는 부분과 자루부분으로 되어 있다. 햇볕을 가리는 부분은 둥근형·모난형·종형이 있으며 첨이 없는 것, 한 개인 것, 두 개인 것, 세 개인 것이 있다. 자루는 길며 곧은 것과 구부러진 것이 있다.

 

≪참고문헌≫ 우리 나라 鹵簿儀仗에 관한 연구(백영자,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청구논문,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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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까만건 글씨고 하얀건 백그라운드임?

에잇 내 무한 스크롤을 받아라 드르륵드르르르르륵!!!! 하는 나같은 언니들을 위해서 요약하자면

 

삼국시대,통일신라,고려 시대에도 우산은 있었음 양산겸용으로 왕이나 권위있는 자들만이 사용했는데

순수한 우산의 기능으로만 사용한게 아니라 권위의 상징으로도 사용함

 

 

그럼 사회지도층들은 우산 쓰고 다니고 나머지 사람들은 비맞고 다녔나효?ㄴㄴㄴㄴ이것도 아님

 

 

 

우산은 사용하지 않고 우산 대용품들을 썼음

 

 

면.....

........

............ 그여자네집

 

 

 

이 아니라 이것도 설이 두 가지가 있는데

 

 

 

1. 우산이 하늘(天)을 받친다고 하여 중국 천(天)자의 상징으로 알고 일부러 쓰지 않았다.

 

2. 우리 민족의 우산 풍습에는 농경민의 정서가 철저하게 반영된 것으로

오랜 옛날부터 농사를 지어 왔기 때문에 비가 내릴 때 도구를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가리는 것은  하늘을 거역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비가 와도 하늘이 주는 복으로 알고 가리지 않았다.

 

 

 

서민들은 하늘에서 내린 비를 우산으로 받는 것은 불경이라 하여 그 사용을 금지당하
였으므로, 도롱이와 삿갓으로 비를 막으며 일을 하였고, 기름종이로 전모(氈帽)를 크게 만들어 쓰거나 갈모를 쓰기도 하였다. 갈모는 기름종이를 원뿔모양으로 만들어 비를 피했다.

 

 

 

지배층은 일산 쓰면서 백성들은 왜 못쓰게함? 어이없넹 더러운 신분제도!!!!!! ⊙▽⊙ㅗㅓ !!!!!!

 

ㄴㄴㄴㄴㄴㄴㄴㄴㄴ

양반들도 우산보다는 갈모를 더 많이 썼고 백성들도 아무렇지 않아했음

 

 

니가 어케암? 니가 조선시대 가봤음? 나대지마라

 

⊙▽⊙........

 

그...그건 아니지만

 

 

 

실제로도 개화기 때, 어느 미국인 선교사가 오랫동안 가뭄이었다가 비가 풋휴루로아옷엏앟 쏟아지는 날에 우산을 쓰고 길을 나섰다가 가뭄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위해 하늘이 비를 내려주는데 하늘이 내려주는 복을 가린다고 분노에 찬 백성들에게 비오는 날 먼지나도록 신명나게 몰매를 맞음 이뿐만 아니라 다른 선교사들도 비 올때 우산을 쓰고 나갔다가 똑같은 이유로 몰매를 맞았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독립신문>에 자주 실림 그래서 선교사들은 혹여나 복음전파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여 한동안 우산을 쓰고 외출하는걸 금했다고...⊙▽⊙...

 

 

 

 

 백성들은 정말 아무렇지 않았어요

다행이에요

 

 

 

 

 

그럼 또 여기서 갈모란?!

 

 

 부채처럼 가지고 다니다가 비올 떄 뙇!!

 

 

 

원이름은 갓모[笠帽]이며 우모(雨帽)라고도 한다. 언제부터 썼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선조
때의 이제신(李濟臣)이 쓴 《청강선생후청쇄어(淸江先生鯖語)》에는 선조의 전왕인 명종 때를 전후한
입제(笠制)의 설명에 우모에 대한 기록이 있어, 조선 전기부터 일반화된 것으로 짐작된다.


갈모의 모양은, 펼치면 위는 뾰족하여 고깔 모양이 되고, 접으면 쥘부채처럼 된다. 만드는 방법은 기름을
먹인 갈모지(환지라고도 한다)에 가는 대오리로 접는 칸살마다 살을 넣어 붙이고, 꼭대기에 닭의 볏처럼
 생긴 꼭지를 단다. 비가 올 때 우산처럼 펴서 갓 위에 덮어 쓰고 중간쯤 안의 양쪽에 달린 실끈으로 턱에 매었는데, 갓 없이 쓸 때는 갈모테를 쓴 다음에 썼다.

갈모테는 90 °쯤 구부린 대오리에 4개의 대오리살을 만들어 꼭대기에 모으고, 안에 헝겊으로 틀어 만든
 미사리를 달아 접었다 폈다 하는 것으로 갈모를 편 모양과 비슷하다.

 


 갈모의 모습의 모습을 보시죠

 

 

두둥

 

 

 

?

 

??????????????????????????
????

으아니

이게 어찌된 일임? 이 꼬깔콘 같은건 뭐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허걳 선준도령이 비 올때 이 꼬깔콘 같은걸 머리에 얹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걸오사형도?!! 구용하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ㄴ아님

 

 

 

원래 이랬음↓↓↓↓↓↓↓↓↓↓↓↓

 

 

갓 폭이 줄어들기 전인 1873년에 나온 그림을 뚜르뜨몽드지에서 소개한 것

 

원래의 갈모는 꼬깔콘 같지 않았음

 

갈모는 그 이름대로 갓모에서 나왔기 때문에 과거 갓은 상당히 폭이 넓었고 갈모가 조선 전기부터 사용되었다면 갓의 폭에 맞추어 제작되어 왔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산을 쓴것 보다 훨씬 더 넓은 면을 보호해 주는 상황도 만들어 질 수 있었을거임⊙▽⊙

여름의 경우 비가 많이 오는 한반도의 특성상 우산과 같은 도구를 항상 지참해야 했을 것이고 우산과 같은 대가 없어서 소지하기도 편했을 거임. 그러다 보니 조선에 들어와서 우산 대신 이 갈모가 발달된 것이 아닐까 추측!!

 

근데 구한말 때 흥선대원군이 검약운동을 실시하여 갓의 폭을 줄여버리면서 갈모도 저렇게 되버림 ⊙▽⊙ 검약종결자.... 

그리고 줄어든 갈모는 위의 사진으로 보다시피 비를 막아주는 기능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임ㅋ..ㅋㅋ

 

 

 

유생들이 흥선대원군을 못마땅해한 이유는 과연 서원철폐 때문이었을까.............????......????

경복궁 중건 때문이었을까..........???? 혹시...............아주 혹시........... 다른 이유가..........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갈모라던지..갈모라던지..갈모라던지^^!!!!!

 

 

 

갈모와 같은 형태는 조선시대 부터 유행한 것이고
이전 고려시대에도 우산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처음부터 갈모의 형태를 가진 것은 아니었을거임.

정확한 설은 없고 어떤 유학적 연관성 때문에 발달한게 아닌가 생각해 보지만 나도 잘 모름^_^.....몰라 추측뿐.....

여자들은 쓰개치마를 썼고 기생들은 

 

 

이런 전모를 써서 햇빛 가리개로 쓰고 비도 막았다함

 

 

 

 

 

그리고 지우산은 다른 곳에서 유용히 사용됨

 

 

 

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며.
아랫그림은 과거시험보는 장면인데.
우산으로 가린것이 컨닝 방지용이라는데..
양반이 시험보는데 서너명이 함께 있는 이유는
그때당시 양반들이 너무많아 시험보는 사람이 많아서
시험을 빨리보기위해 글을 빨리쓰는 사람과 빨리 시험문제를 제출할수 있는
힘이센사람이 함께 했다라는..


출처 http://blog.naver.com/jantutu/70070272209

 

 

우산은 컨닝방지용으로 거_들_뿐 jpg

 그림은 조선후기 과거시험 보는 것을 그린 그림인데 저 우산의 형태가 보이시나여....?

 

양반들은 명분을 갱장히 중요시해서 본격_양반의 위엄으로 비가 와도 바지를 걷지 않거나 뛰지 않았던 것처럼

손에 우산을 들고 덜렁덜렁 가는 것보다 간지나게 뙇!!!!!!!!!!!!!!쓸 수 있는 갈모가 더 유용했을 수도.....☆

 

또 이외에도

 

 

 

 

 

지우산이 보이시져?⊙▽⊙

 

 

근데 왜 우리는

 

지우산=일본 전통 우산

으로 당연하게 떠올릴까요? ⊙▽⊙ 실제로도 내가 이 자료들을 찾으면서 보니까 지우산하면 다 일본 우산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더라구요 일본 전통 우산을 치면 지우산이 드르르륵 일본 우산 쳐도 지우산이 드르르륵

지우산 사진만 있는 글에도 이쁜 일본 전통 우산이라하는 글이 드르륵 기모노만 쳐도 지우산이 주르륵 뜨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지우산을 잘 애용하지 않았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에서 지우산이 유래됐으니까 중국은 많이 뜨려나 하고

중국 전통 우산이라던가 중국 우산을 쳤는데

 

 

 

 

왜 이딴게 나오는겅미 ⊙▽⊙!!!!

 

 

정상적인 사진⊙▽⊙!!!

 

 

중국 전문가분이 400년 된

국제무형문화제 기름종이 우산제작 기법을 뽐내고 있음

 

1863 - 1888년 사이에 활동하던 사진가, William Saunders 가 대략, 1870 년도 쯤, 중국 상하이에서 찍은 사진

출처 http://blog.ohmynews.com/sophiako/rmfdurrl/47216

 

근데 내가 여러군데서 검색해보니까 지우산하면 일본>>>>>>>>중국>한국순으로 많이뜸

애니,일러스트,영화,드라마,일반인 사진 등등에서 지우산 비율이 일본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중국은 일러스트,일반인 사진 등등

한국은 잡지 사진 밖에 없음;; 이것도 겨우 찾음 

 

 

일본은 이런쪽에서 대단한거같음 스...스고이 데스네...

 

 

 

 

 

아마 영화나 애니등이 지우산=일본 전통 우산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는데 영향을 주었을거임

그리고 일본은 이미지 메이킹으로 홍보를 잘하니까...^_ㅜ 

(실제로는 우리나라 한지가 질적으로나 미적으로도 우수한데 서양에서는 일본의 와지가 대접받는 것처럼..ㅎ..ㅋㅋㅎ...이거 내가 한지부심으로 구라치는거아님 TV스페샤루에서도 실험 한거임[(((나)))]) 

 

 

 

출처 http://21culture.tistory.com/134

라오스

 


태국

출처 http://coooca.blog.me/90113154179

 

하카 부족

출처 http://formosa.tistory.com/32

 

 

 

또 동남아시아에도 전통 지우산이 있음;;;; 난 이거 찾으면서 처음 알음;;;;; (나만 이런거냐능...^_ㅠ)

 

 

우리만 보더라도

 

 

이게 당연한거고 되게 익숙하지 않음?!!

 

 

 같은 아시아권인 우리나라에서 조차 이런데 서양에서는 아름다운 재패니즈 우산으로 알고 있는 곳이 많을거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50년대에 철제 우산이 만들어졌지만

 40,50,60년 대에 지우산이 유행하고 60년대에 '비닐'로 만든 지우산이 유행함

 

그러다가 90년대 중반부터 중국산 플라스틱 우산이 마구 수입되는 바람에 망함ㅋ..ㅋㅋㅋㅋ 쭝꿔런..ㅋ...ㅋㅋㅋ

 

 

 

 

 

 

아 또 그리고 지금 우리가 쓰는 천과 살로 이루어져 있는 박쥐형태의 현대적 개념의 우산은  영국의 무역업자 '조나스 한웨이'가 발명한 것임 ⊙▽⊙!!!! 시발 모이리 추가할게 많아!!!!

 

 

 

 

 

하여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우산은 일본만의 고유한 전통 우산이 아니라

 

일본 전통 우산도 이렇게 생기고 태국 전통 우산도 이렇게 생기고 한국 전통 우산도 이렇게 생기고 중국 전통 우산 등등드으드으등 아시아권 전통 우산은 다 살대가 많아서 저렇게 생김

 

거의 모든 아시아 나라 전통 우산이 저렇게 생겼다고 생각하면 됨⊙▽⊙

 

 

낯선 지우산에서 물에 놓아주면 당장이라도 지느러미를 흐느짝대며 유영할 것 같이 야들야들한 스시의 냄새가 난다?!⊙▽⊙

그러면 일본 우산

 

닉쿤 왕자님의 쿨워터 향이 날 것 같다?!! ⊙▽⊙

그러면 태국 우산

 

 

한복에 지우산을 들고 있다해도.....아 뭥미....왜의 냄새가.....일본 우산을 왜 한복을 입고 쓰고 있음?;;;안어울려;;;;;;; 라고 이상하게 생각할거 없다는거임!!!⊙▽⊙ 근데 딱 봐도 일본 디자인 지우산이면 이상하겠지염

 

 

 

그리고 글에 대해 질문하지마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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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글쓴이 : 건담이 말을 건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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