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 자는 이유, 당신 탓이 아니다
과학향기
겨울철 아침은 늦잠과의 싸움이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아침에 눈을 뜨는 게 고역이다. 일찍 잠들기, 강력한 알람 맞춰 놓기 등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해 보지만, 안간힘을 써 봐도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게을러서일까? 아니면 선천적으로 잠이 많아서일까? 지금부터 늦잠 자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파헤쳐보자.
우리 몸에는 시계 역할을 하는 유전자가 있다. 이 유전자들은 잠이 들고 깨는 시기, 필요한 수면의 양 등을 결정한다. 초파리에서는 per, tim, clock, cyc 유전자가 그 역할을 한다. per는 시기를 뜻하는 period, tim은 영원하다는 뜻의 timeless, cyc는 주기를 나타내는 cycle의 줄임말이다. 이름에서부터 생체 시계라는 느낌이 묻어난다.
이 유전자들은 어떻게 우리 몸에게 시간을 알려줄까. 유전자 per, tim, clock, cyc는 각각 단백질을 만들어 낸다. 네 가지 단백질들이 많아졌다 적어졌다를 반복하면서 우리 몸에 시간을 알려준다. PER와 TIM 단백질이 많아지면 각성효과가 생기면서 잠에서 깨고, 줄어들면 잠이 온다. 보통 오전 6시부터 단백질 수치가 점점 높아졌다가 정오부터 낮아져 오후 3시가 되면 가장 낮아진다. 어김없이 낮잠이 몰려오는 시간이다. 그러다 조금씩 높아져 저녁 9시에 최고점을 찍고 다시 양이 줄어든다.
생체 시계 유전자들의 조절에 따라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24시간 주기의 생체곡선을 갖는다. 대개 아침형은 늦은 아침부터 정오까지 PER와 TIM 단백질의수치가 올라가면서 주의력이 높다. 반면 저녁 6시가 넘어가면 단백질 수치가 떨어지면서 주의력도 급격히 떨어진다. 저녁형은 그 반대다. 오후부터 집중력이 높아져 오후 6시 이후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
늦잠을 자는 이유도 특정 유전자에서 찾을 수 있다. 늦잠꾸러기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수면시간은 다른 사람과 비슷하지만 아침잠이 유독 많은 경우. 저녁이면 정신이 맑아져서 밤늦게 잠자리에 들고 이 때문에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이다. 영국 서레이대 사이먼 아처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per3 유전자가 짧은 사람이 대게 이런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faxl3 유전자도 늦잠에 관여하는 유전자다.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우리 몸은 하루를 길게 인식한다. 쥐로 실험한 결과, 정상 쥐는 하루를 23.6시간으로 인식했지만 faxl3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쥐는 하루를 27시간으로 인지했다. 쉽게 말해 밤 12시를 오후 9시쯤으로 인식하고 오전 7시를 새벽 4시쯤으로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일찍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고 아침이면 일어나는 게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평균 수면시간인 8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자야만 하는 특정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경우다.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4시간 일하고 15분씩 자는 방법으로 하루에 여섯 번 잠을 잤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하루 90분의 짧은 수면시간에도 결코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영국의 수상 처칠도 같은 방법으로 하루 4시간 이하로 잤고, 나폴레옹과 발명왕 에디슨도 하루에 4시간 이상 자지 않았다. 반면 아인슈타인은 매일 11시간씩 잤던 늦잠꾸러기로 유명하다. 이렇게 짧게 자고도 괜찮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긴 시간을 자야만 괜찮은 사람이 있다.
수면을 늘리는 대표적인 유전자로 ABCC9가 있다. 유럽에서 7개국 4,251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필요한 수면량이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더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즉,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최소 8시간 반에서 9시간은 자야 아침에 일어날 때 개운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초파리를 이용한 추가 연구에서도 이 유전자를 가진 초파리가 평균 3시간 정도 더 잤다.
그 이유는 칼륨 이온 통로에 있었다. 신경세포는 이 통로를 통해 신경정보를 뇌로 전달하는데, ABCC9 유전자가 이 통로를 망가뜨려 신경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면량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변이가 일어난 셰이커 유전자도 칼륨 이온 통로를 망가뜨린다. 하지만 ABCC9 유전자와는 반대로 수면 시간을 줄여준다. 미국 위스콘신대 키아라 치렐리 박사가 초파리 9,000마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균 수면시간(800분)의 3분의 1만 자고도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초파리들을 발견했다. 사람으로 치면 하루에 3~4시간만 자고도 멀쩡한 것이다. 이 초파리들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셰이커 유전자의 아미노산 하나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잠을 적게 자고도 멀쩡하니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대신 이들의 수명은 보통 초파리에 비해 짧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도 셰이커와 같은 기능을 가진 유전자가 있다. 초파리로 잠 유전자를 연구하는 최준호 카이스트 교수는 “잠은 항상성이 있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 평균 수면시간을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며 “유전자에 문제가 생겨 항상성이 충족되지 못하면 반대급부로 수명이 단축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노인이 되면 잠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말일까? 이는 나이가 들면서 수면 패턴이 변했기 때문이다. 노인의 수면 패턴은 넓은 U자형으로, 조금씩 자주 잠을 자서 평균 수면시간을 채운다. 반면 아이들의 수면 패턴은 좁은 U자형으로, 평균 수면시간을 밤에 몰아서 푹 자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잠을 못잔 것도 늦잠의 이유가 된다. 못잔 잠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는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8시간을 평균 수면시간으로 보는데, 전날 5시간을 잤다면 그 다음날은 빚진 3시간을 합해 11시간을 자야 다음날 피곤함 없이 정상적으로 깨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전날 잠을 설치면 우리 몸은 수면 빚을 갚기 위해 더 늦게까지 자려고 한다.
다른 계절에는 그렇지 않은데, 유독 겨울이면 늦잠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일조량의 변화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잠을 오게 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밤이 길어질수록 분비되는 시간이 길어진다. 때문에 밤이 긴 겨울에는 멜라토닌이 아침 늦게까지 남아있어 늦잠을 자게 되는 것이다.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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