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4.29 10:04 | 수정 : 2015.04.29 10:19
신기전의 존재를 대학생 때 찾은 필자는 기회가 되면 복원해서 신기전이 비행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1993년 대전 엑스포 때에 삼성항공에서 복원비용을 후원해주었다. 제작설계는 필자가 하고 종이 약통의 제작과 화약 충전은 인천에 있던 ㈜한화의 연화 팀에서 맡았다. 소신기전, 중신기전, 대신기전을 모두 복원해서 발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대신기전은 시험 제작 때마다 약통이 폭발했다. 흑색 화약이 3㎏ 정도씩 들어가는 약통이 폭발하면 위력이 대단했다. 대신기전 복원과 공개발사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당시에는 소신기전과 중신기전을 화차에서 발사하는 것만 공개했다.
2008년 초부터 항공우주연구원에서 지원해 대신기전 복원을 다시 시도했다. 2006년 여름부터 1년 동안 미국의 모교에 방문교수로 있으면서 유럽의 18세기 대형 로켓에 관한 자료도 수집하고 일본의 전통로켓인 용세(龍勢) 혹은 유성(流星)의 자료도 수집했다. 1993년에 신기전의 약통제작과 화약을 충전해주던 ㈜한화는 이 분야 사업을 정리했다. 할 수 없이 전통 흑색 화약 전문가의 도움으로 흑색 화약을 만들고 화약 충전은 병기도설에 기록된 방법대로 필자가 직접 연소시험을 했다. 약통에 화약을 조금 넣었을 때는 문제가 안 되는데 화약을 많이 넣고 시험하면 폭발이 됐다. 신기전 약통에는 화약의 타는 면적을 크게 하기 위해서 분사 구멍 위에 원뿔꼴로 구멍을 만드는데 원뿔꼴 구멍은 타들어 갈수록 면적이 커져서 이 때 압력이 커지며 폭발 것이었다. 다시 병기도설의 기록을 분석해보니 약통의 분사구멍에 화약의 연소 중에 구멍이 커지지 않도록 하기위해서 황토로 분사구멍을 만든 것이 문제였다. 현대식 고체추진제 로켓은 연소가스의 압력을 높여 배기가스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모두 이러한 구조로 만든다. 그런데 신기전의 약통은 분사구멍에 황토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약통의 분사구멍을 만들 때 황토를 사용하지 않으니 설계대로 화약을 많이 채워도 문제가 없었다. 대신기전은 약통 수십 개를 만들어서 시험하며 2008년 9월 19일 첫 비행에 성공했다.
- 2010년 전남 고흥에서 실시한 대신기전의 발사 장면. /채연석 박사 제공
최무선이 처음 만든 로켓화기 주화(走火)는 처음에는 많이 사용되지 않았는지 실록에도 가끔 사용기록이 보인다. 이런 주화가 대량으로 사용되는 것은 세종 29년(1447년) 가을부터이다. 종류도 소, 중, 대주화로 늘어나고 이해 연말까지 평안도와 함경도에서 모두 3만 3000발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한양의 군기감에서 주화를 제작해서 수천 발씩 보내주었는데 갑자기 수효가 늘어나자 재료를 현지로 보내 그곳에서 제작하게 된다. <②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