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기타정치역사

[스크랩] 일본은 한국을 근대화시키지 않았다

lionet 2010. 12. 24. 21:15

식민지를 근대화시켰다고?

‘인구증가론’,‘경제성장율’,‘문맹율의 저하’의 허구

 

일본 사람들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나쁜 짓도 했지만 조선을 근대화시키는데 공헌했다’는 소리를 많이 한다.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경제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중 일본의 이 같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찬동하는 사람들이 몇 있다. 더욱이 이 이론에 동조하는 젊은층들도 꽤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하거나, 식민지 근대화론에 동조하지는 않지만 일제의 강점이 한국의 근대화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조선인의 문맹률이 저하되고, 출생률도 증가했으며,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들과 학교의 수가 증가, 경제성장률 등의 통계자료를 근거로 일제강점기는 무조건적인 수탈의 시대는 아니었고, 일제강점기를 수탈의 연속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일본인들이 근대화의 증거이며 일제의 선정의 징표로 내세우는 가장 큰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인구증가론’, ‘경제성장율’, 그리고 ‘문맹율의 저하’이다. 

 

일본학자 미조구치에 의하면 1909년부터 1938년까지의 평균경제성장률은 조선이 2.99% 일본이 2.20% 대만이 2.17%였다고  한다. 이걸 들어서 일본인들, 그리고 식민지 근대화론에 동조하는 한국인들은 "일본본토가 성장률이 2.2%고 같은 식민지인 대만은 일본본토보다 성장률이 낮은데, 유독 조선만이 높지 않느냐"고 하면서 일본이 한국 근대화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식민지경제를 분석할 때 흔히 나오는 이론이 ‘수렴화 가설’ 이다. 수렴화가설이란 식민지와 침략국은 하나의 국가 하나의 경제가 되었으므로 차별이 없고 정상적인 국가운영을 했다면 양국의 경제격차가 해소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설이다. 일본의 강점 이전 조선과 왜국의 소득격차는 대략 3배가 차이가 있었다 한다. 만일 수렴화 가설대로라면 조선의 성장률은 일본의 서너 배는 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설의 문제점은 소비지출면을 보면 확연해진다. 역시 일본학자 테라사끼에 의하면 1912년부터 1938년까지 소비지출은 조선이 0.97이고 일본이 1.50, 대만이 1.12 이라 한다.

 

생산은 조선이 제일 높은데 소비는 일본의 반을 겨우 넘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게 바로 수탈경제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노동력을 착취하며 대량 생산하게 만들고 소비는 전혀 하지 못하게 하는 것.

 

더욱이 곡물 등의 소비는 전혀 늘어나기는커녕 1920년대 후반부터는 줄어든다. 그 대신 담배 술 등의 소비가 현저히 증가하는 것이다. 밥은 조금 먹고 술담배에 쩔어 지냈다는 이야기다.

 

상기의 성장률이나 소비에는 조선 땅에 또아리 튼 일본인들도 포함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분배구조로 보아 일본들이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실제 조선인의 경제사정은 숫자 이상으로 열악했음이 분명하다.

 

왜 소비가 그토록 열악했는가는 임금추이를 보면 알 수가 있다. 미조구찌에 의하면 일제시대 제조업의 임금은 지속적으로 올랐는데 농업노동자의 소득은 1915년경을 피크로 지속적으로 내려갔다. 상상이 가는가? 임금이 지속적으로 내려간다는 이야기?

 

제조업에 있어서도 숙련노동자의 임금만이 올랐을 뿐, 조선인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숙련노동자의 임금은 1920년 이후 지속적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임금이 1910년대의 임금을 하회했다는 비상식적인 일이 실제로 일어났었다.

 

다음으로 인구증가론을 보도록 하자.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논리에 의하면  경술국치 당시 조선의 인구가 1,300만이었는데, 종전 당시의 인구는 2,700만이므로 두 배가 되었으니 ‘착취를 당하고 어떻게 인구가 배증하느냐’고 한다.

 

일본인들이 처음으로 신뢰가능한 인구통계를 낸 것이 1925년이다. 그 이전 일본인들은 조선의 인구에 대해 발표하기를 1910년에 1,300만명이라 했다가, 1915년경에는 1,700만명이라 발표했다. 불과 5년 사이에 인구가 400만이나 늘어나는가?

이는 1910년에 이미 1,700만은 있었는데, 제대로 통계가 잡히지 않아서 실상은 1,700만이던 인구가 40년 후에 2,700만이 된 것이 맞을 것이다.

 

19~20세기는 전 세계 인구가 100년간 3배로 불어난 시기인데 40년 동안 고작 50% 늘어난 게 대단하다는 이야기인가?  일본인 및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지를 보려면 부정확한 인구통계보다 인구가 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인 영아사망률을 보면 안다. 조선의 영아사망률은 20년대에 25.9% 30년대에 23.6% 40년대에 23.1%로 정말 조금이지만 줄고는 있다. 기대수명도 37.39세 39.94세 40.85세로 극미하나마 늘고는 있다.

 그런데 해방 후, 머지않은 50년대의 기대수명은 50.34로 일제말기로부터 무려 10세가 늘어난다. 이는 무얼말할까? 정말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논리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보여주는 사례이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조선의 문맹률 하락을 보겠다.

 

일제시대에 취학률이 높아진 것은 사실인데 그게 전부 소학교 지금의 초등학교 이야기고 중고등교육에 관한한 일본인들은 한 게 전혀 없다.

 

요시카와에 의하면 조선의 취학률이 1910년에 남자 20% 여자 0%였던 게, 1930년대 말에 남자 60% 여자 20%가 되었다 한다. 그런데 요시카와는 일본이 쳐들어오기 전에도 서당이나 사립교육기관에서 초등 교육이 이루어졌고, 그런 것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은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공장이나 논밭에서 부려먹기에는 초등교육은 받는 게 안받는 거보다 유익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일제시대에는 초등학교 취학률은 남녀평균 40%지만 중고등학교로 가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것이다.

 

 해방 직후 중고등학교 취학자수는 달랑 8만 1천명이다. 그게 그 후 매년 두 배에 달하는 스피드로 늘어나 한국전쟁 후인 1955년에는 74만 명에 달한다. 대학진학자는 해방 당시 달랑 8만여 명이던 게 55년에는 10배로 불어난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찬양하거나, 혹은 찬양하지 않더라도 그 이론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는가? 일본인들이 주장하듯이 식민지 조선이 평균 2.99%에 달하는 성장을 한 것은 매우 성공적인 식민지 경영이다. 그렇다고 조선인이 성공적인 경제성장의 과실을 향유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식민지 근대화론 지지자들은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일본이 조선에 공장, 시설 들을 만들어 주었기에 그나마 우리가 그걸 토대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니 일제강점기를 너무 수탈 저항의 측면에서 보지 말라고 말이다. 물론 일본이 우리나라에 많은 공장이며, 기간시설을 세운건 사실이다. 하지만 근대화에 필요한 공장, 기간시설은 대부분 북쪽에 위치했다. 그나마 남쪽에 있던 공장이며 기간설비는 북쪽에 비하면 거의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나마도 6.25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일본의 토지조사사업을 가리켜 근대적 토지소유권을 수립을 통해서 조선 자본주의 발달에 '어쨌거나' 조금 기여한 것은 사실이라 말한다. 그렇지만 과연 그렇게 단순하게 보아야 할까? 근대적 토지소유권 확립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것이 한국인들에게 혜택이 주어줬는가? 일제강점기 하 토지조사사업은 한국인을 위한 것이 아닌 일본인을 위한 것이다. 이것이 조선의 자본주의 발달에 기여했을지 몰라도, 이는 일본인들을 살찌우는 정책이었다.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땅을 잃은 조선의 농민들이 큰 피해를 보았고, 조선 농가 경제가 파탄되었다. 이것이 어찌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산미증식계획 같은 경우에도 수탈적인 성격은 있으나 몰락한 농민, 즉 조선의 과잉인구가 도시로 진출해서 도시공업화에 기여한 측면 => 이 역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몰락 농민들이 도시로 진출하여 공업화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공업화가 우리를 위한 공업화였나? 일본을 위한 공업화였다. 게다가 시대가 지날수록 노동자의 임금이 하락하는 것은? 이게 과연 근대화의 과정이라 볼 수 있을까? 게다가 그러한 공업화는 일본의 경제, 일본의 부를 살찌웠지, 우리의 경제는 살찌우지 않았다. 오히려 식민지인 우리의 자원, 노동력을 착취함으로써 일본과 조선의 경제적 격차는 그 갭이 점차 커졌다. 단순 수치상으로 조선이 많은 경제성장, 공업화를 이루었을지 몰라도 그 실속은 일본이 챙긴 말하자면 속빈 강정과 같은 상태였다. 이것이 어찌 근대화에 기여한 측면이라 할 수 있을까?

 

1997년 말 터진 IMF 국가위기 부도사태 때 이 위기를 일본정부가 우리를 도와줘서 벗어났다고 헛소리를 하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일본인들의 말도 안되는 논리에 동조하는 한국인들.... 이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우리가 해방된지 60여년이 지났지만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식민지 근대화론에 동조하는 한국인들 그들은 뇌도, 쓸개도, 가슴도 없는 인형같은 존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끝으로 아시아경제의 권위자인 퍼킨스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일제하의 조선의 경제성장은 단한가지 예외적 사실을 제외하면 대단한 성공이다. 그 예외란 그 성장의 은혜를 입은 조선인이 거의 없다는 것, 그리고 대다수의 조선인은 생활수준의 저하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조선의 성장의 수혜자는 저렴한 조선의 쌀을 소비한 일본의 소비자이며 그 조선의 철도 산업 노동력을 이용한 일본의 군부이다.”  


 

 

 

 

 








 

 

 

 

출처 : 한류열풍 사랑
글쓴이 : 호루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