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홍일 장군
우리나라 최초이자 마지막 오성장군( 계급 : 원수)
김홍일 장군은 1989년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났지. 이분은 어렸을적부터 고집과 신념이 엄청
강한분이였어. 머리도 좋아서 그 지역에서 유명한 오산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지. 그리고 처음에는
선생님이 하고 싶어서 경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어( 여기까지 누구랑 똑같지? 맞어 박정희랑 비슷해)
그리고 이분은 평안북도에서 민족운동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독립비밀결사 조직을 만들다가 일본 용암
포 경찰서에 붙잡히게 되지만 탈출하여 1918년 9월 상하이로 망명하지. 이때부터 김홍일 장군의
인생사는 화려하면서도 영화 같은 인생을 살게 되지.
상하이로 망명간 김홍일 장군은 김구, 신규식, 여운형 선생들을 만나고 확고한
독립의지를 갖게 되지. 그래서 육군강무학교( 현 대만 육군사관학교 전신)에 입학하
여 근대식 군사교육 받고 잠시 중국군 장교로 활동하지. 그러면서 많은 전투 경험을
쌓고 훌륭한 장교가 되어가고 있었찌. 그런데 1920년 당시에 대한독립군은 청산리
전투 이후 내부 갈등으로 인해 침체기를 겪고 있었어. 따라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무
총창이었던 노백린 선생이 김홍일 장군에게 이제는 경험은 그만 쌓고 독립군에서 활
동하라고 권유했지( 그 당시에 김좌진 장군이 공산주의자에게 암살당하고 해체돼는
분의기에서 한명 한명이 아쉬었지) 그때부터 김홍일 장군은 공산주의자들을 싫어하게
돼. 김홍일 장군 눈에는 공산주의자들은 독립의지는 커녕 지들 권력 잡으려는 암투를
쓰는 돼지들처럼 보였었지. 차후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부 최고의 권력을 갖게
되는 김홍일 장군은 공산주의자들과 대립각을 새우게 되지.
<김구 주석과 젊은 시절 김홍일 장군)
그렇게 1920년부터 30년대 중반까지 독립군 20여명을 이끌고 일본군 초소를 습격하면
서 아주 혁혁한 전과를 새우게 돼지. 그때 쓴 전술이 게릴라 전술인데 그 당시 부하 20
명이 이 전술을 터득하게 되고 그 부하들이 나중에 한국전쟁 당시 북한인민군에서
이 전술을 쓰는데 그게 바로 빨치산 전술이야. ㅡ,.ㅡ;;; 참 아이러니 하지
자 그렇게 30년대 중반까지 독립군 활동을 하다가 문제가 일어났어. 자유중국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군을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는거야. 그래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는 김홍일 장군을 보내 광복군이 정식으로 인정되도록 노력하지. 그때 당시에 김홍일
장군은 장개석과 조우하게 되는데 장개석이 "이런 인물이 중국에는 없다니 안타깝다"
라고 할정도로 칭찬을 했지. 그렇게 김홍일 장군은 다시 중국 국민혁명군에 들어가서
혁명군 총지휘부 참모 소령으로 활동하게 되고 중국이 일본군을 무찌르는데 엄청난
공헌을 하지. 그러면서 폭탄 제조가인 중국인 상차도를 알게 되고 폭탄 제조법도
알게 되지. 윤봉길 의사가 던진 그 도시락 폭탄있잖아. 그거상타도랑 김홍일 장군이랑
<장개석(아래)과 김홍일 장군(위)> 둘이서 같이 만든거야.
이렇게 김구 선생님, 장개석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자유중국(현 대만) 혁명군 속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며 젊은시절 많은 경험을 쌓은 김홍일 장군은 1940년도부터 군인으로써
전성기를 맞게 돼지. 42~43년 사이 중일 전쟁 당시에 김홍일 장군은 자유 중국 혁명군 (현 대만)
1개 여단을 이끄는 여단장이 돼서 일본군을 무찌르는데 1개여단(2천명)으로 일본군 2개사단(1만
5천명) 무찌르는 운남성 전투에서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지. 아마 그 1개 여단이 중국 혁명군이
아니라 독립군이었으면 아마 국사책에 대서특필 되어 있겠지. 그때부터 장개석은 김홍일 장군을
엄청 존경하고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유 중국 혁명군 3대 장군의 반열에 오르게 돼지.
그리고 1943년 다시 김구선생의 부름을 받고 독수리 작전( 광복군 한반도 수복 전쟁)을 위해
다시 광복군으로 돌아오고 광복군에서 참모장이 되고 그 당시 최고사령관이 지청천 장군을 도와 미국 OSS( 전략정보국 현 CIA) 와 합작
하여 독수리작전에 힘쓰다 일제가 항복해버려서 작전은 중단되었지.)
해방 된 후 김 장군은 다시 친분있던 장개석의 요청으로 자유중국 군에 들어가서
모택동가 싸우게 되는데 1개 사단으로 모택동의 6개 사단을 막아버렸어.
그 후로 모택동이가 김홍일 장군을 엄청 싫어하게 되. 아 맞다. 드라마 전우에 나온
박웅 장군( 이덕화 분)의 실제 모티브 인물이 바로 김홍일 장군이야. 그렇게 중국내전
에 참가하다가 김구 선생님의 요청으로 귀국하여 조선경비단( 현 대한민국 국군의 모
태)를 창설하게 되지. 뭐 모르는 애들이 우리나라 군대가 일제 시대 일본군 출신 애들
만든건줄 아는데 대한민국 국군의 모태 즉 조선경비단을 창설한 사람은 지청천 장군
과 김홍일 장군, 그리고 손원일 제독이야. 따라서 우리나라 국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 광복군을 이어가는 정통성이 있는거지.
그리고 김홍일 장군은 조선경비단을 창설하고 국군 제 1군단장으로 임명되지.
그러다가 6.25한국 전쟁 당시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으로 한강 방어전을 수행했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이 3일동안 서울에서 머무르는 바람에 적화통일이 안됐잖아
그 3일동안 진격을 멈춘사람이 김홍일 장군이지. 여기서 일화가 있는데 1군단장( 김홍일 장군) 휘하 사단장들은 일본군 출신 장교들이
었는데 모두 전쟁이 나자 겁먹고서 후퇴하며 도망가기 바뻤는데. 김홍일 장군이 머리에 총 겨누면서 "그렇게 도망가면 총살시킨다"
라고 윽박질렀지. 일본군 출신 장교들은 원래 기회주의자에게다 겁이 많잖아. 특히 백선엽이 그랬는데 백선엽이랑 김홍일 장군이랑
엄청 사이가 안좋았어. 결국엔 51년도에 그 일본군 출신 장교들이 모함 겸 견책으로 김홍일 장군 옷을 벗기게 되지. 김홍일 장군은 51년
어거지로 군복을 벗게 되고 중국대사로 임명되어 대만으로 가게 됏어. 아픈 현실이야. 한국전쟁 당시 백선엽 처럼 일본군 출신 장교들은
전쟁에서 이길 생각은 안하고 어떻게 하면 권력을 잡을까 궁리만 했지. 정녕 북한군과 싸운 독립군 출신 장군들은 이 일본군 출신 장교들
여우같은 속샘들을 모르고 다 당했지. 이게 우리 국군 현대사의 역사야. 그래서 아주 콤플랙스가 많은 일본군 출신 장군( 백선엽, 박정희)
들은 김홍일 장군을 군인 취급안하고 국군역사에서도 빠트릴려고 난리쳤지. 그래서 책이나 뉴스 보면 한국 전쟁 당시 영우은 죄다 백선엽
이잖아. 백선엽은 도망가기 바쁜 겁쟁이에 불과 햇는데 말야. 그래서 1980년도 후반까지만 해도 장교들의 우상은 백선엽이었지만
이제 시대가 흐르면서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이제 거의다 군부를 장악하고 제대로 된 역사가 씌여지면서 많은 군인들이
이제 김홍일 장군을 최고의 장군으로 인정하고 있지. 머 여튼 우리나라 국군에서는 최초 그리고 마지막으로 별 5개인 오성장군이야.
20세기 풍미했던 장군이지.
드라마 전우에서 독립군 출신이며 장개석과 친구사이 이고 한국전쟁 당시
6사단장으로 나온 박우 ( 유덕화 분) 는 김홍일 장군이 모티브 된 인물이다.
KBS가 김홍일 장군을 꺼냈어도 저렇게 욕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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