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고대사이야기

[스크랩] [카이스트 이종호 교수] 과학으로 찾은 고조선

lionet 2011. 9. 21. 09:57

 

“ 기원전 6000년(사해, 흥륭와문화)부터 시작된 동이족이 홍산문화(기원전 4500~3000년)를 거쳐 하가점하층문화(기원전 2000~1500년, 즉 고조선 시기)를 이뤘고, 상나라의 시조 설과 그의 손자 상토, 그리고 7대 왕해와 8대 상갑미를 거치면서 중국 중원으로 이동하여 급기야 기원전 1600년 무렵 하나라를 대파하고 천하를 통일했다는 설명이 된다. (334쪽) ”

 

 

 

 

   우리 역사학자들이 아직도 민족사학과 실증사학으로 나뉘어 고조선이 역사다 아니다 라고 싸우고 있는 사이, 중국은 1996년에서 2000년까지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을 통해 하나라를 BC 2070~BC 1600, 상나라를 BC 1600~BC 1046, 주나라를 BC 1046~BC 771로 다시 설정하였습니다. 이어 2001년에서 2006년까지 중화고대문명탐원공정(中華古代文明探源工程)에서는 신화와 전설의 시대로 알려진 ‘3황5제’의 시대를 역사에 포함시켜 1만년으로 끌어올린 중국문명을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보다 오래된 세계 최고의 문명으로 밝히고자 하고 있습니다.

 

   중화문명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명분아래 진행한 이 중화고대문명탐원공정 중 요하일대 역사를 다시 확정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彊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으로 우리의 고구려역사를 가져가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그 동북공정(東北工程)입니다. 중국은 이 공정을 마무리하면서 요하일대에 4대문명보다 앞선 요하문명권이 존재했다고 발표하는데, 이를 토대로 기존 역사보다 1000년 이상 기원을 올려 잡고 중화 5천년을 공식화합니다.

 

   “ 중국학자들이 발표한 것처럼 홍산문화에 있었다는 신비왕국은 한국인에게 매우 놀라운 결론을 끌어내게 한다. 단군조선보다 1000여 년이나 앞선 시기에 과거부터 한국인의 고향으로 알려진 장소에서 국가가 존재하고 있었다면, 그보다 1000여 년이나 후대로 추정되는 고조선이 존재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에 대한 설전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된다는 점이다. (76쪽) ”

 

   “ 적어도 거의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중국인의 시조인 황제가 홍산인이라면 그보다 몇 백 년 후대인 한민족의 선조라는 단군(기원전2333년)은 그의 후예가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바로 중국이 그동안 부단히 준비해 온 동북공정의 핵심이다. (137쪽) ”

  

   글쓴이는 중국측 요하문명론 주장대로라면 이 지역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가 중국의 역사로 간주되므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등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로 변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북한은 물론 일본의 학자들까지도 고조선이 있었다고 짐작해 왔던 중국 요령성 조양일대에서 수많은 유물이 발견되자 황하문명보다 앞선 문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중국. 그들은 고조선에 대해선 언급조차 없이 요하일대에 신비의 국가가 있었으며 중국의 선조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글쓴이는 중국이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을 낮추어 중화를 드높이는 역사관을 바꾼다 하더라도 동이족의 역사를 중국역사로 가져갈 수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화하족이라 일컬어지는 중국민족과 동이족이라 일컬어지는 한민족은 인종학적으로도 뚜렷한 차이가 있을뿐더러 요하일대에서 출토되는 수많은 유물들이 우리에게 친숙한 빗살무늬 토기, 고인돌, 비파형 청동검, 돌무덤이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2700년경 탁록에서 벌어졌던 동이의 치우와 화하의 황제 간에 벌어졌던 ‘탁록전투’를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는 중국. 요하문명을 중국의 문명으로 가져가기 위해 동이의 수장은 치우가 아니라 황제라고까지 주장하는 중국의 학자들에게 글쓴이는 친절하게 고대사를 이야기해 줍니다.

 

   “ 아주 오래 전 동이족의 중심무대였던 요하지역에서 홍산문화 시기에 청동기 문화의 맹아가 텄다. 그리고 홍산문화부터 시작된 등급사회와 예제가 갈수록 발전했고, 청동기와 석벽, 적석총의 전통이 하가점하층문화 시기에 꽃을 피워 이곳에서 고조선이라는 강력한 국가가 건설되었다. 이 강력한 국가 가운데 일부 지파가 중원으로 내려와 중국이 명실 공히 인정하는 상나라를 건국했다. ”

 

 


 

   마지막으로 단군이 너무 늦은 1281~1283년경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실존 인물로 보기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우리의 실증사학자들과 가끔 민족적 자존심과 선입견 등으로 고대사를 포장하거나 과장하기도 하는 우리의 민족사학자들에게 글쓴이의 맺음말을 전합니다.

 

   “ 중국인들이 일방적으로 그동안 한국에서 도외시하던 상고사 부분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설명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바로 그 점이 역으로 우리들의 상고사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것과 다름아니다. 한마디로 중국의 자료를 통해 한민족의 것을 선용한다면 그동안 소홀히 하던 한민족의 상고사, 즉 고조선을 더욱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보다 많은 연구로 더욱 좋은 자료가 확보되면 어렵기만 하던 한국의 상고사도 어두움에서 빛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우리 역사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413쪽) ”

 

 


 

※ 참고용 지도

 

 

 

 

 

 

출처 : 한류열풍 사랑
글쓴이 : 고래고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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