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기타정치역사

[스크랩] 실록을 보니 "독도에 조선사람 살았다"

lionet 2012. 3. 2. 00:43

 

 

   실록을 보니 "독도에 조선사람 살았다"


[사진=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맑은 날 울릉도에서 보이는 독도'
   울릉도에서 독도를 쵤영한 사진이 오늘 21일 아침 일부 신문에 실렸습니다.
   독도 연구의 권위자인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이 전문 사진가에게 의뢰해 촬영에 성공한 사진이
라고 합니다. 지난해 11월 2일 아침 7시 무렵에 찍었습니다.
   최서면 원장은 "맑은 날 울릉도에서 독도를 볼 수 있다는 옛 문헌 기록을 일본 측이 자꾸 부정하고
있어 촬영을 시도했다"며 "독도가 한국의 고유 영토임을 뒷받침하는 부정할 수 없는 근거"라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작지만 또렷이 보이는 독도의 모습.
   지난해 8월 기자가 독도로 처음 갈 때 배 위에서 본 모습과 똑같습니다.



   기자는 지난해 여름휴가 때 홀로 울릉도를 찾았다 독도를 방문했습니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는 배로 2시간반 거리. 기자가 탄 삼봉호는 8월 11일 오전 7시 30분 도동항을
출발했습니다('독도엔 누가 사나' http://blog.joins.com/n127/8412391 ).
   오전 9시 무렵.
   도동항을 출발한 지 2시간 가량 지나자 독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울릉도에서 찍은 사진 속 독도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왼쪽에 뽀족 솟아오른 것은 무엇일까. 궁금증이 발동했습니다.



   서도 북쪽에 있는 탕건봉입니다. 서도 정상 높이는 168.5m, 탕건봉은 98m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오전 10시 무렵 드디어 동도쪽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선착장 반대편인 서도에 위치한 어업인숙소 앞에서 놀고있는 꼬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누구일까.
   독도에는 김성도-김신열씨 부부가 2006년 2월 19일 들어와 살고있었죠. 두 분은 1996년 태풍으로
숙소가 파손되는 바람에 울릉도로 나와 살다 10년 만에 다시 들어간 것이죠.
   꼬마는 아마 손자인 듯 합니다.
  



도동항 옆 망향봉에서 동남쪽 방향. 위 사진은 도동항, 아래 사진은 망향봉 반대편 봉우리.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 '삼척도호부 울진현'편에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2섬이 현의 정동(正
東) 해중(海中)에 있다. 2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고 기
록되어 있습니다. 무릉은 지금의 울릉도이고, 우산이 독도입니다.
   지난해 기자는 독도를 다녀온 직후 도동항 옆 망향봉에 올랐지만 바다쪽에 안개가 끼어 아쉽게도
독도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과거 독도에 사람이 산 적이 있을까.
   조선왕록실록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성종 7년(1476년) 2월 8일(음력인 듯)에 이런 일이 있었더군요.
   지금 종성에 있는 친군위 노의순이 상언하기를 '지난해 5월에 경성(鏡城) 사람 김한경과 회령 사람
임도치와 경원(慶源) 사람 임유재, 김옥산, 이오을망, 김덕생과 더불어 경원지방의 말응대진에 나아
가서 배를 타고 3일 동안 가서 삼봉도(三蓬島)를 보았는데, 멀리서 바라보니 섬 가운데에 7, 8인이 있
었으나, 우리 무리들은 고단하고 약하여 육지에 내려가지도 못하고 돌아왔습니다'고 하니, 경이 노의
순 등 각 사람에게 상세히 물어서 아뢰라.
   성종이 영안도(지금의 함경남도) 관찰사 이극균에게 지시한 내용입니다.
   여기서 삼봉도는 독도의 또 다른 이름이더군요.
   같은 해 6월 22일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지금 경이 아뢴 것을 보고, 경성의 김한경 등 2인이 신묘년(1471년) 5월에 삼봉도에 표박하여 섬사
람과 서로 만났었는데, 또 을미년(1475년) 5월에 한경 등 6인이 이 섬으로 향하였다가 7, 8리쯤 떨어
진 곳에서 섬이 멀리 바라보였지만 바람에 막혀 끝내 도달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말을 비
록 믿을 수는 없지만, 또한 혹시라도 거짓이 아니라면 지금 건장하면서도 믿을만한 사람 3인을 보내
어 한경 등과 섬 안으로 들어가서 수색하여 보게 하라.
   조선 성종때 이미 "독도가 사람이 산다"는 보고가 여러 건 있었습니다.
   또 10월 22일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영안도 관찰사 이극균이 치계하기를 "영흥 사람 김자주가 말하기를 '삼봉도를 가보고 또 그 모양을
그려왔다'고 하므로 김자주를 보내어 바치게 합니다" 하였다. 명하여 물어보게 하니, 김자주가 대답
하기를 "경성 바닷가에서 배를 타고 4주(晝) 3야(夜)를 가니, 섬이 우뚝하게 보이고, 사람 30여명이
섬 입구에 벌려 섰는데 연기가 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흰 옷을 입었는데, 얼굴은 멀리서 보았기 때문
에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대개는 조선사람이었는데, 붙잡힐까 두려워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
니. 유의 두 벌을 하사하였다.
   1476년 독도에 '조선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문헌으로 남긴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위 김자주가 독도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병조에서 아뢰기를 "영흥 사람 김자주의 공초에 이르기를 '본도(本道)의 관찰사가 삼봉도를 찾는
일로써 김자주와 송영로 그리고 전일(前日)에 갔다 온 김흥, 김한경, 이오을망 등 12인에게 마상선 5
척을 주어 들여보냈는데, 지난 9월에 경성 땅 옹구미에서 배를 출발하여 섬으로 향해 같은 날 부령
땅 청암에 도착하여 자고, 17일에 회령 땅 가린곶이에 도착하여 잤으며 18일에는 경원 땅 말응대에
도착하여 잤고, 25일에 섬 서쪽 7. 8리 남짓한 거리에 정박하고 바라보니, 섬 북쪽에 세 바위가 벌여
섰고, 그 다음은 작은 섬, 다음은 암석이 벌여섰으며, 다음은 복판 섬이고, 복판 섬 서쪽에 또 작은 섬
이 있는데 다 바닷물이 통합니다. 또 바다 섬 사이에는 인형같은 것이 별도로 선 것이 30개가 되므로
의심이 나고 두려워서 곧바로 갈 수가 없어 섬 모양을 그려 왔습니다' 하였습니다. 신 등은 생각하기
를 왕년에 박종원이 강원도에서 배를 출발했다가 바람을 만나 이르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지금 김한
경 등이 경성 옹구미에서 배를 출발하여 다시 그 길로 출입하면서 섬 모양까지 그려왔으니, 지금 만
약 간다면 찾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청컨대 명년 4월 바람이 온화할 때에 문무의 재능을 가진 자를
한 사람 선발하여 들여보내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동도와 서도 사이의 촛대바위.

   532년 전 김자주 일행이 독도에서 본 것은 지난해 기자가 독도에서 본 것과 다를 것이 없겠죠.

출처 : 한산이씨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들
글쓴이 : 기라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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