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의 역사전쟁은 현재 진행형이고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내부의 보이지 않는 왜곡부터 바로잡아야 할 참입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바른 역사를 알려주어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언젠가 바로잡아야 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한반도 북부를 중국의 식민지로 만들어버린 한국사 교과서
교수의 말대로 황당한 일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박물관 어디를 가더라도 저런 지도는 수년,십수년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이제와서야 알게 된 것일까요?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정말 황당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를 당황케 하는 것은 저 중국의 왜곡된 지도들의 빌미를 우리 학계가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정말 그러냐구요?
네 정말 그렇습니다.
전 세계에 나가 있는 지도들입니다.
세계 사람들은 한나라 시절 한반도 북부를 중국이 지배한 것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지도만 안그려놓았을뿐이지 우리 교과서가 똑같이 기술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현재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한의 군현(한사군이라는 용어는 80년대 국사파동이후에 안씀)을 한반도 내부로 끌어들이는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역사왜곡이며 일제 식민사관의 핵심이었으며 동시에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장구치고 그들의 손을 들어주는 숨어있는(?) 문장들입니다.
이 한의 군현에 관한 내용을 고조선과 백제,고구려 파트 여러곳에 분산배치(?)해놓았습니다.
일제식민사관이자 동북공정의 핵심인 한사군 在한반도설을 중고등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반도 북부를 고대 중국의 식민지로 만들어버린 국사 교과서들의 행태
<문제> 아래의 1) 2) 3) 을 합하여 한군현의 위치와 시기를 맞추어보세요
1) 한나라는 고조선을 멸하고 한의 군현을 설치했다
◇ 고조선이 멸망하자 한은 고조선의 일부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지배하고자 하였으나 토착민의 강력한 반발에 부딛혔다. 그리하여 그 세력은 점차 약화되었고 결국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소멸하였다. [국정교과서 34쪽]
◇ 한의 군현이 설치된 후 억압과 수탈을 당하던 토착민은 이를 피하여 이주하거나 단결하여 한의 군현에 대항하였다. 이에 한의 군현은 엄한 율령을 시행하여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려하였다. 그에 따라 법조항도 60여조로 증가하였고 풍속도 각박해져갔다. [국정교과서 국사 35쪽]
◇ 한은 고조선의 일부 영토에 낙랑 등 군현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한 군현은 이 지역 백성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세력이 점차 약화되었다. 고등학교 한국사 ㈜ 삼화출판사 19
● 백제는 한강 유역의 토착세력과 고구려 계통의 유이민 세력의 결합으로 성립되었는데 (기원전 18) 우수한 철기문화를 보유한 유이민 집단이 지배층을 형성하였다. 백제는 한강유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던 한의 군현을 막아 내면서 성장하였다. {국정교과서 국사 47쪽}
● 백제는 한강유역에서 한의 군현과 맞서면서 성장하였는데 고이왕 때 한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국사교과서 지학사 2012년 27쪽]
● 백제는 중국의 한이 한강유역으로 세력을 확정하려고 하자 이를 막아내면서 성장하였고 3C전반에는 신라와 경쟁하면서 세계를 더욱 키웠다. <고등 한국사 법문사 25쪽>
● 백제는 3세기 고이왕때 중국 군현의 침략을 막아내면서 나라의 기반을 다졌다. <중학교 역사 상 두산동아 45쪽>
● 백제는 건국 직후에 한 군현의 압력을 받아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에 대항하면서 성장하여 3세기 중엽 고이왕 때 이르러 중앙집권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고이왕은 북쪽의 낙랑과 싸우면서 남으로 목지국을 정복하여 중부 지방을 차지하였다. <고등학교 한국사 ㈜ 삼화출판사 26>
3) 고구려는 한 군현의 하나인 낙랑군을 4C에 몰아내고 남쪽(대동강이남)으로 진출했다 (즉, 고구려 아래 한반도 북부에 한나라 식민지가 있었다는 문장)
○ 고구려는 건국 초기부터 주변의 소국들을 정복하고 평야지대로 진출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압록강 가의 국내성(집안)으로 옮겨 5부족 연맹을 토대로 발전하였다. 그후 활발한 정복 전쟁으로 한의 군현을 공격하여 요동지방으로 진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쪽으로는 부전 고원을 넘어 옥저를 정복하여 공물을 받았다. [국정교과서 국사 37쪽]
○ 고구려는 3세기 중반 위나라의 침입을 받아 한때 위축되기도 하였으나 4세기에 이르러 5호 16국 시대의 혼란을 틈타 활발하게 대외 팽창을 꾀하였다. 미천왕때에 낙랑군을 완전히 몰아낸 고구려는 압록강 중류지역을 벗어나 남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국정교과서 국사 49쪽]
○ 고구려는 미천왕때 낙랑군을 완전히 몰아내고 남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국사교과서 지학사 2012년 28쪽]
○고조선이 멸망한 후 한은 한반도에 여러 군을 두어 다스리고자 하였다. 이에 토착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단결하여 한에 대항하였다. 한은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고 마지막까지 버틴 낙랑군은 고구려가 공격하여 소멸하였다. <중학교 역사 상 비상교육 출판 41쪽>
○ 4C초 미천왕은 중국의 분열을 틈타 낙랑군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의 황해도 지역까지 영토를 넓혔으며 .... <중학교 역사 상 두산동아 43쪽>
○고조선이 멸망하자 한은 고조선의 일부지역에 군현을 설치하고 지배하였으나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물러났다. <고등 한국사 법문사 18쪽>
○ 4세기 초부터 중국이 북방 민족의 침략을 받자 이를 기회로 삼아 고구려는 요동을 다시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미천왕때 남쪽으로 진출하여 낙랑군을 몰아내고 대동강 유역을 점령하였다. 고조선과 낙랑군의 중심지였던 평양을 차지함으로써 고구려는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한국사 ㈜ 삼화출판사 25 >
더 많은 국사 교과서를 찾아봐도 서술 문장은 거의 유사합니다.
일본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 (阿部信行 : 1875~1953)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인들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해방후 6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일제 식민사관의 논리인 한나라 식민지 한사군 한반도 內 설치라는 이론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영토는 광복되었으나 역사광복은 아직 멀었습니다. 역사는 아직도 그때 그시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지독한 식민사학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합니다.
[참고1]금지된 장난,일제 낙랑군 유물조작 다큐 영상 (SBS스페셜 역사전쟁 )
1. http://youtu.be/y1lb2fEqu1c
2. http://youtu.be/OsUNs87a52c
3. http://youtu.be/JyMEeH1m5yQ
4 http://youtu.be/9d0lPBxJq-E
5. http://youtu.be/5dOMJL_MrNY
6. http://youtu.be/PWLr_uE1YPU
7. http://youtu.be/FbanAfUof1U
8 http://youtu.be/PESVfdKZC3Y
* 우리 역사를 한사군의 식민지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으로 조작하려 애썼던(?) 일제 식민사학자들 .. 그들의 철저한 노력(?)은 우리 주류사학계가 아직도 낙랑군 在평양설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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