⑯일본의 날조된 역사를 본다-일본에 식민지를 두었던 가야(伽倻)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기사입력 2012-12-15 20:14:43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한민족(韓民族)의 구성은 사학적 관점(史學的 觀點), 인류학적 관점(人類學的觀點), 고고학적 관점(考古學的觀點), 언어학적 관점(言語學的觀點) 등에서 구명(究明)을 할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서 그 주역의 단위가 국가였는가 아니면 민족이었는가의 문제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그 답이 다룰 수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사를 서술함에 있어서 우리나라 역사는 국가사(國家史)이기에 앞서 민족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한편 우리나라 역사는 국가사(國家史)였고 왕정체제(王政體制)하에 있었던 일이기에 왕조사(王朝史)였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고 본다. 오늘은 고대 삼국이 정립(鼎立)하고 있었던 시기에 변한(弁韓)지역에서 일어났다가 중앙집권국가로 완성되기 전 삼국의 압력을 받아 신라에 병합된 가야국(伽倻國)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은 가야국(伽倻國)을 두고 그곳에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가 있었다고 날조하고 우기면서 우리나라역사를 뒤집어 보려고 획책하고 있으나 그 실상은 일본이 주장하는 것과 완전히 상반된 것이기에 기술하려고 한다.
가야는 김수로왕을 시조로 받들었다
가야(伽倻 혹은 加羅)는 이미 다 아는바와 같이 신라보다 약 100년 늦게 낙동강 중·하류에서 고조선의 제후국인 한(韓)의 지배를 받던 변한(弁韓)지역에 세워진 6개 부족국가들이다. 6가야(伽倻)인 금관가야(金官伽倻), 아라가야, 성산가야, 고녕(古寧)가야, 소가야(小伽倻), 대가야(大伽倻)가 있었다. 이 중 금관가야가 맹주(盟主)가 되어 안으로 결속(結束)을 굳게 했다. 그들은 김해 구지봉(龜旨峰)에 나타난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始祖)로 받들었다. 이 6가야는 서쪽으로부터 백제의 압력과 동쪽으로부터 신라의 압력을 받아 어려운 상태에 있었다. 가야伽倻)는 당시 쇠와 농산물이 풍부해 교역을 하던 왜국(倭國)에 진출, 그곳에 임나(任那)라는 작은 분국(分國)을 만들고 연맹(聯盟)하여 신라와 백제에 대항했다. 임나(任那=일본명 미마나)는 왜(倭) 땅에 건설한 우리 가야의 식민지였다. 이 가야(伽倻)의 식민지 ‘왜’(倭=임나(任那)와 ‘가야’(伽倻)에 시달리던 신라는 고구려에 구원을 청했을 정도였다.
이에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의 군대가 399년에 가야를 치고 바다를 건너 왜를 함락했다. 그 후 고구려의 세력이 팽창, 532년 장수왕(長壽王)이 남침해오자 가야·신라·백제는 연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후에 정세가 변해 532년 신라가 금관가야를 병합하고, 백제도 가야의 영토를 쳐서 빼앗았다. 세력이 약해진 가야(伽倻)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백제의 도움을 받아 신라를 공격했으나 562年 고령대가야마저 신라에 병합돼 6가야는 멸망한다. 김유신(金庾信)은 신라에 항복한 금관가야 마지막왕의 자손이다.
가야는 건국되기 전부터 일본열도에 건너가 많은 일본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당시 왜(倭)의 문화수준은 구석기시대인 야요이시대(彌生時代)에 머물러 중앙 집권화(集權化)된 통치 행정능력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일본은 수차 언급한 대로 일본 고대사에 처음 등장하는 나라도 규수(九州) 후쿠오카(福岡)에 기원전 1세기 옛날 가야인(伽倻人)들이 배를 타고 가서 건설한 나라다. 당시 한국무녀(韓國巫女) 히미고(卑弥呼)가 여왕이 돼 구주(九州) 수십 부족을 통일하고 위(魏)나라에 239년에 조공을 해서 명제(明帝)로부터 친위왜왕(親魏倭王)의 칭호를 받았다고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에 나와 있다. 이 같은 실존역사가 일본의 첫 나라였다. 당시 일본은 없었던 셈이다.
일본이라는 국호는 671년부터였다
일본의 나라다운 나라는 일본에서 태어난 오진(應神) 진구황후의 아들이 일왕의 나라를 세워 왜(倭)라 하고 하면서 비로소 뚜렷한 실존인물인 왜왕 1대가 됐다. 일본이라는 나라 명(名)을 쓰기 시작한 것은 백제가 멸망한 후의 일이다. 당시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장(扶餘豊璋)이 사이메이(齊明)의 뒤를 이어 덴지(天智) 일왕이 되고 671년 당(唐)의 승인을 얻어 일본(日本)이라는 국호(國號)를 갖게 됐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생기기도 전인 4세기~6세기 사이에 소위 일본부(日本府)라는 것을 한반도에 설치하고 가야를 지배 했다느니, 신라·백제· 고구려까지 정복했다느니 하는 주장들은 거론 될 가치조차 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인 것이다. 일본의 양심 있는 학자들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가야론(伽倻論)에서 주의 할 점은 일본인들은 가야가 신라에 병합됐기 때문에 흔히 가야와 신라를 같은 나라(가야=신라)로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가야를 임나(任那=미마나)라고 부르며 옛적에 가야 인이 규수(九州)등에 만든 가야의 식민지 임나(任那=미마나)와 혼동하고 있어서 우리의 생각과 180도 다르다.
이러한 잘못 된 생각으로 가야를 미마나(任那)로 잘못 부르는 것 때문에 일본 측에서는 그들이 떠나간 고향이 미마나 일본부((任那日本府)란 게 설치됐던 곳 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일찍이 가야국의 유력한 주요 세력들이 왜의 땅으로 건너가 일본국 건설에 참여했다. 이들은 가야가 이미 망해 신라에 병합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떠나온 한반도 안의 일을 잊지 못하고 과거에 살았던 구역을 엉뚱하게 다시 차지해야 한다는 꿈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옛 고국을 회복하는 일을 소위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지배라고 착각하였던 것이다. 긴메이(欽明) 일왕은 571년 대담하게 신라에 사신을 보내 가야(일본이 임나라고 부르는)를 멸한 이유를 묻고 “신라를 쳐부수고 임나를 다시 세우라”고 유언했다. 그리고 일본 사서(史書)에는 가야국이 완전히 멸망해 신라에 병합 된 후에도 조공이니 공조니 하는 것을 600년 까지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임나지배의 꿈을 완전히 버리고 아주 단념한 것은 일본군이 나당 연합군에게 패망한 덴지(天智)천황 이후였다고 한다.
일본은 유민이 된 한을 골수에 품고 있는 나라다
이 같이 한국과 일본이 상당수 같은 조상을 둔 가까운 종족이나 일본은 자신들이 유민이 된 한을 골수에 품게 됐다. 우리는 과거 수천 년 동안 국가성립, 문화, 문물제도 등 세계에 유례없이 일본에 전적으로 도움을 줘 일본이 발전하도록 했지만 일본인은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하고 있다. 현재의 일본은 독자적인 문화를 갖고 있기는 하나 항상 한국에 대해 원한을 갖고 있는 민족이다. 특히 명치유신 이후 대한 침략사관과 역사왜곡은 너무나도 비사실적이며 역설적이다. 그 정도가 대담한데 놀라고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실들은 일본에 가면서 가져간 사서 신황기(神皇紀)를 보면 알 수 있다. 신황기는 “백제 인이 일본에 와서 일본인들을 깨우쳐 문화를 전하고 천황이 됐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즉, 신황기는 몇 대까지 백제 인이 즉위한 일황인지 시대를 분명히 했다. 아울러 상기(上記)는 단군이 손인 73대 진무(神武)가 일왕이 됐다고 쓰여 있는데도 일본은 막무가내다. 못 말리는 족속들이다.
일본은 우리가 하사(下賜)한 것도 우리가 진상(進上)했다고 교과서에 실어 넣는 몰염치한 자들이다. 예컨대 백제 고이왕(古爾王) 17년에 신공여왕(神貢女王)의 아마다이국을 정벌하고 부여(夫餘)씨의 왜국건설이 제후국(諸侯國)의 부강을 원하는 뜻에서 태화(泰和) 4년이라고 연호(年號)가 새겨진 칠지도(七支刀)를 하사(下賜)한 것을 백제가 진상했다는 일본이다. 칠지도는 지금도 일본 나라현(奈羅縣) 이시가미 신사에 봉안돼 있다. 와다나베 미쓰토시(渡邊 光每)는 “고대 천황가 도래의 그 뿌리가 백제왕가에서 나왔다”다고 실토하고 일본의 역사날조와 왜곡된 것을 말하고 있는데도 일본은 눈뜨고 거짓 역사를 말하고 있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그 행태(行態)는 바뀌지 않고 있다. 근대에 와서 한국을 침탈하면서 그 왜곡은 극에 달한다. 명치천황이라는 일왕도 역사 왜곡을 위해 관개토대왕의 비의 변조를 명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의 역사왜곡에 직접 관여 하고 있다. (다음에 계속)
출처 : 한류열풍 사랑
글쓴이 : 라이온맨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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