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싸이트에 조회수와 추천수가 기록적인 게시물이 올라왔다.
제목은
" 노무현대통령 탄핵의 진짜이유 ..그리고 잘못된 과정과 죽음까지"
일단 무척 긴 글이다.
왠만하면 읽지 않으시기 바란다.
그렇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면 저절로 끝까지 읽게 된다.
탄핵한표추가가 그랬으니까...
이 글을 굳이 올리는 이유는
이 글을 읽어봐야
지금 친노니 비노니 주류니 비주류니 하며 난장판이 된 민주당의 실체를 알 수있으며
작금의 정권의 개노릇을 하는 작자들의 행동패턴을 알 수있기 때문이다.
원래 긴 글은 좀 짜증이 나니까 그냥 패스해버리시는데
어지간하면 님들도 이 부분에서 그냥 나가셔도 된다. 워낙 글이 좀 기니까...
그래도 꼭 한번쯤은 읽어보고
주위에 추천해주고 싶은 그런 글임은 분명하다.
노무현의 탄핵을 이해하시려면,
노무현의 성품과 성장과정, 당시 권력과의 대립,구조를 다 아셔야 이해가 가능합니다만.
이 글만 읽어도 충분히 이해 하실것으로 예상 됩니다.
전문은 팟캐스트"이박사이작가의 이이제이의" 노무현특집에서 나온 이야기를 발췌하였고,
대화를 글로 구성하기 위해 문체와 단어를 조금 변경하고, 군데군데 제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포스트에 대해서 이이제이팀께는 따로 양해구하고 허락받았습니다. ^^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20대들이 꼭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길어도 꼭 끝가지 정독해 주시길 바랍니다.
노무현대통령이 탄핵되었던 상황, 이유, 퇴임후 구속수사까지 다 나와있으니..
노무현에 대해 궁금한분이라면 꼭 끝까지 읽어주세요.
* 노무현 대통령 "탄핵 찬성명단" 이 궁금하신 분들은
탄핵을 이야기하기 전에,
노무현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뤄진
한나라당의 재미난 연극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노무현대통령 흔들기, 공격하기, 조롱하기, 비난의 히트는 '환생경제' 라는 연극입니다.
한나라당 초·재선의원을 중심으로 '여의도'라는 극단을 만듭니다.
(초·재선은 힘이 없으니까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 함)
이 여의도라는 극단은 2004년 08월,
전남 곡성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환생경제'라는 연극을 합니다.
* 연극보기 ☞ http://youtu.be/WWmuMiYBwT8
■ 배역
- 노가리 - 무능한 술주정뱅이 (노무현지칭) : 주호영의원
- 민생(노가리 아들) : 심재철의원
- 경제(노가리 아들)
- 박근애 - 노가리의 헌신적인 아내 (박근혜 지칭) : 이혜훈의원
- 경제 여자친구 : 나경원의원
- 저승사자 : 주성영의원
- 번영회장 : 송영성의원
- 부녀회장 : 박순자의원
- 수집상 : 이재웅의원
- 번데기 : 정두언의원
- 깍두기 : 정병국의원
- 단장 : 박찬숙의원
■ 줄거리
무능한 술주정뱅이 '노가리'(주호영)의 둘째 아들 '경제'가 '후천성 영양 결핍'으로 죽었다.
하지만 '노가리'는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술에 절어 집터 탓만 해대며 이사 타령만 한다.
경제 어머니 '근애'(이혜훈)만 죽은 아들 '경제'를 살리기 위해 헌신한다.
결국 '저승사자'(주성영)는 경제를 살려주되,
대신 무능한 남편 '노가리'를 데려가겠다고 하지만 3년 후로 집행을 유예하겠다고 말한다.
마을 사람들이 죽었던 '경제'가 살아난다고 소리치며 극은 막을 내린다.
[출처 : 위키백과]
자, 이 우습고 쓰레기같은 연극이 왜 문제가 될까요.
연극중에 노무현을 지칭하는 노가리를 향해,
육시랄놈(여섯갈래로 찢어죽인다는 뜻), 잡놈, 불알갑, 거시기 달 자격도 없는 놈 등
성적비하 발언과 원색적인 욕설을 합니다.
이때 박근혜는 연극을 보는내내 웃었다고 합니다.
김용민 막말이 어쩌고 저쩌고 할 입장이 아닌거죠.
옛날엔 막걸리먹다가 '박정희가 국민을 못살게 하는것 같다'는 한마디를 했다고
남산에 끌려가서 고문까지 당했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이 연극을 진행하고 연기한 한나라당, 전부 민주주의에 무임승차한 사람들입니다.
독재반대 투쟁할 때 아무 것도 한게 없죠.
그런데 세상 좋아지니 이런 식으로 대통령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겁니다.
여러분이 잘 알아 두셔야 할 것이
선거를 제대로하면 이런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선거 제대로해서 제대로 된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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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탄핵에 대해 본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2003년 02월 25일 : 노무현 대통령 취임
- 2004년 03월 12일 :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
- 2004년 05월 14일 : 헌법재판소 탄핵소추안 기각. 노무현 대통령 복귀.
노무현을 전~혀 도와주지 않던 새천년민주당과, 그런 민주당에게 힘을 실어주며
이회창 당선을 100%장담했던 한나라당의 기대를 확! 꺾어버리고.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노무현 대선후보당시 민주당은 노무현을 돕지 않았습니다.
필독 ☞ http://blog.naver.com/eminent8/20182159768
노무현을 역적처럼 생각했던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은
대통령이 된 노무현을 끊임없이 흔들기 시작합니다.
노무현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보수언론과 사이가 안좋았습니다.
(조선일보가 바른소리 하는 노무현을 엄~청 싫어했음)
결과만 보자면 집권기간 5년내내 보수언론과 한나라당, 그리고 권력은
노무현의 발목을 잡았고,
김대중 대통령을 힘없는 대통령으로 만든것도 모자라,
노무현을 더 힘없는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며
무언가를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상황끝에 결국 탄핵이라는 역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게 합니다.
1.
2004년 1월5일 새천년민주당의 조순형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중립 의무위반이며측근비리와 재발방지를 확약할 것을 요구하면서,
이에 응하지않으면 민주당은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고 발언합니다.
한나라당이 한게 아니라, 민주당이 한겁니다.
조순형도 이해가 안가는게 본인도 야당국회의원이었고 탄압받던 시절이 있었죠.
근데 그 시절 생각못하고 세상 좋아졌다고
대통령한테 대놓고 이상한 소리하는게 말이 되는건지
ㅋㅋㅋ
2.
2004년 2월 24일 총선을 두달 앞둔 시점에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1주년 기자회견에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모든걸 다 하고싶다" 라고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합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즉각 반발하며 들고 일어납니다.
이 발언이 대통령의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했다면서 대대적인 공세를 가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중앙선관위에 이 발언이 선거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가려줄것을 정식요청합니다.
이에 중앙선관위는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상의 선거중립의무규정'에 위배된다고 유권해석을 내립니다.
이런겁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중심제이고, 그만큼 대통령 권한이 막강한 나라입니다..
근데 노무현대통령 취임1년만에 탄핵사건이 터졌으니 노무현의 권한이 얼마나 약해졌는지,
노무현을 반대하는 소위 대한민국의 주류세력들의 저항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여당의 당적을 가지죠.
그럼 대통령이 여당의 승리를 위해 도와주는건 당연한겁니다.
노무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중앙선관위는 노무현 대통령은 법을 어겼다고 유권해석을 내립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말 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대통령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YS 취임2년 뒤. 95년 지방선거가 있었는데요,
이때 김영삼 대통령은 선거전에 전국에 대대적인 선물공세를 합니다.
강원도에는 국제공항, 동서고속철도, 충남은 고속철도, 대전구간 지하화, 지하철설치
부산에는 그린벨트 해제 전라도에는 종합개발권 등 전국각지에 선물을 듬뿍 줍니다.
이렇게 김영삼이 여당의 총선승리를위해 선물보따리를 풀었을 때,
우리 중앙선관위가 뭐라했는줄 아십니까?
"대통령의 지역개발약속은 발표시기를 늦춰도 정책을 수행하는데 장애가 없으면
공명선거 분위기 조성을 위해 자제하는것이 바람직하다"라고 합니다.
법을 어겼다가 아니고, 자제하는것이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좀 살살하란 이야기이죠.
노무현 대통령과 똑같은 이야기인데 당시엔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앙선관위가 ys에게 자제를 부탁하자,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은 중앙선관위에게 한소리 합니다.
뭐하냐고.
그러니까 중앙선관위는 바로 꼬리를 내리고 '내용취소'를 합니다.
그래놓고 노무현한테는 중립을 위반했다고 유권해석을 내린거죠.
김영삼은 괜찮고 노무현은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형평성에 어긋나는 유권해석을 한것이 바로 이나라의 선관위입니다.
18대 대선도 마찬가지였죠. 투표소변경, 수개표누락 등 권력의 눈치만 보는 집단이었죠.
가장 공정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가
권력앞에선 순한 양이 되는 이런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쓰면서도 울분이 터지네요)
한나라당이 더 재미있는건,
자신들이 노무현대통령을 끌어내릴때 '공무원'을 들먹이며 탄핵을 주도했습니다.
대통령은 공무원입니다.
공무원은 중립을 지켜야하는데 그것을 어겼다고 탄핵을 한겁니다.
별 다른게 없습니다.
우리 이명박 전 대통령도 대통령이었으니 '공무원'입니다.
한번 비교해봅시다.
작년 18대 총선 나흘전,
이명박은 이재오의원의 지역구인 은평구를 찾아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이건 뭡니까? 이건 선거운동 아닌가요?
이재오는 더 웃깁니다.
불법선거 지원을 받고도 무려 낙선합니다. ㅋㅋㅋㅋ
(노무현 탄핵할 때 이재오도 앞에서 설친사람임)
그렇게 지원받고도 선거에 떨어지니까 MB는 이재오를 정부의 특임장관으로 임명합니다.
그 후 재보선때, 이재오 특임장관은 친이계 계파모임에 참석해서
"재보선이 일주일 남았으니 작전짤사람은 짜고, 현지갈 사람은 가고,
연고자 찾을사람은 찾고, 4.27 승리를 위해 총력을 다하자" 고 합니다.
이것도 탄핵감이죠?
장관인데, 공무원인데 저런 발언을 하다니!
3.
본론으로 돌아와,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이 있었던 그로부터 2주 뒤인 2004년 03월 09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의원 159명이 국회에서 노무현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발의합니다.
*노무현대통령 탄핵 소추안 발의 명단
☞http://blog.naver.com/eminent8/20174457901
4.
탄핵소추안 발의 이틀 뒤, 2004년 03월 1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기자회견을 갖습니다.
여기서 기자들이 국민들에게 사과할거냐고 물어보자 노무현은 이렇게 입장을 정리합니다.
"사과하라는 여론이 있다는건 알고있다. 제게 잘못이 있어 사과하라하면 사과하겠다.
그런데 잘못이 없는데 시끄러우니 사과하고 넘어가자,
탄핵을 모면하자는거라면 나는 받아 들일수가 없다."
노무현 특유의 정면승부 방식입니다.
잘못한게 없으면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는거지요.
(어릴 때의 성격 그대로입니다)
김영삼과 비교해봅시다.
김영삼은 노무현에 비해 더 세게, 더 직접적으로 여당을 도와줬죠?
겉으로는 깨끗한선거 공명정대한 선거를 하겠다고 해놓고,
여당의 선거승리를 위해 대대적 지원을 한게 김영삼입니다.
하지만 노무현은 달랐습니다.
여당의 승리를 도와달라 '호소'했고,
선관위에서 유권해석이 내려지자 받아 들일 수 없다 납득 할 수 없다고 하고,
탄핵소추안이 발의됨을 알았음에도 잘못한것이 없으니 사과할 수없다고 하며
원칙론을 들고나옵니다.
어찌보면 노무현이 융통성이 없다고도 볼 수 있지만,
권모술수나 요령이 없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노무현이 진짜 기회주의자, 권력주의자였다면
탄핵소추안 발의된 걸 미리 알았는데도 왜 가만히 있었을까요?
대국민 사과 그까이꺼 한번하고, 여당야당 우리 친구아이가~하며 잘 지내자 했을테고.
어쩌면 탄핵이란 말이 나오지도 않았을거란 생각도 드네요.
청와대, 언론, 대기업 등 기득권끼리만 잘 먹고 잘살게 해줬으면 탄핵은 무슨.....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언플해줬겠죠.
제가 노무현이었다면
'나의'역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탄핵못하게 막았을겁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근데 노무현은 옳지 않은 일에는 yes 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던 사람인거죠.
이해타산이 난무하는게 이 대한민국 정치사의 현실인데,
여기서 노무현의 원칙론은 나름의 빛을 발했다고 봅니다.
5.
이것(노무현이 사과 못한다고 했던 것)을 보고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 연합전선은
즉각 반발합니다.
선관위의 유권해석조차 무시하는 반민주적, 독재적태도, 국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태도라며
(대통령한테 육시랄놈이란게 누구더라? ㅋㅋㅋ)
이때, 쪽수의 위력을 보여줍니다.
당일 오후에 발의하려 했던 탄핵소추안을 열린우리당이 계속 반대하니까,
일단 후퇴했다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자기들끼리 전력을짜고
03월 12일 새벽에 본회의에 진입합니다.
당시 열린우리당과 제대로 싸웠었죠.
그러나, 2004년 03월 10일 오전 11시.
국회의장 박관용은 경호권을 발동해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국회에 들어섭니다.
(경호권발동은 이럴 때 쓰는게 아닙니다. 무슨 조폭도 아니고)
옆에 경위(가드)들이 들어와서, 농성하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밖으로 내던집니다.
그 당시 유시민의 얼굴을 잊을수가 없네요...
11시 21분, 국회의장 박관용은 즉시 노무현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상정했고
투표결과 195표중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노무현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가결(허가처리)됩니다.
그 순간, 노무현의 대통령 직무수행은 정지됩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이런 적이 없지요.
우리나라는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간선제가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손으로 직접 뽑은 대통령을
국회의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탄핵시켜버립니다.
물론 대통령이 뭔가를 잘못했으면 탄핵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당한 과정을 거쳐 가결이 되어야죠.
끌어내려도 국민들이 끌어내려야죠.
국회의원 자기들이 뭐라고 국민동의도 없이 끌어내립니까?
이때 더 웃긴건 가결 후 국회의원들이 만세를 부릅니다.
대한민국 만세라고. ㅋㅋㅋㅋ
(자꾸 박근혜 현 대통령 얘기해서 죄송하지만,
당시 박근혜의원은 미소를 띄며 앉아계셨지요.
그냥 이게 사실이라 말씀드립니다.)
6.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사람들을 잠시 볼까요?
(한나라당 108명 + 민주당 51명 = 총 159명)
탄핵을 주도하고 이끌어 낸 것은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최병렬입니다.
자, 이제 최병렬이 왜 대통령을, 노무현을 탄핵시키기 위해 앞장섰는지 살펴보겠습니다.
6-1.
전국을 반전시킬 분열카드가 필요했습니다.
왜냐? 당시 한나라당은 대선자금 수사로 인해 '차떼기당'이라 불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대선후보 이회창이 권력에게 검은 돈을 고속도로에서 탑차째로 받음)
노무현대통령 취임 후, 이것에 대해 검찰조사를 시작했었습니다.
국민들은 놀란거죠. '아니, 무슨 고속도로에서 돈을~ 헐~' 하는 반응.
참고로, 사과박스 한 박스에 3~4억이 들어갑니다.
큰 탑차를 통째로 받았으니 대략 얼마인지는 알아서 상상하시길..
이랬기때문에 당대표로서 난국을 빠져나갈 돌파구가 필요했던것이죠.
6-2.
최병렬 개인의 노무현대한 좋지않았던 감정.
최병렬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겁니다.
왜?
노무현은 고졸이니까. 대학을 안나왔으니까
능력으로보나 경력으로보나 항상 자기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는데,
자기는 그저그런 당대표이고 노무현은 대통령을 하니까요.
과거에 노무현이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어필했을 때,
이에 관한 시사저널의 인터뷰를 잠깐 볼까요.ㅎㅎ
최병렬 :
"(노무현의 이야기는)어린애같은 이야기지요.
대권을 의식해 좀 튀어보려고 그런 발언을 한거아닌가요?
뭔가 욕심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평상심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저는, 교육을 제대로 받은사람, 평상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않은 사람은
진리를 보는 태도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최병렬이 말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 = 노무현입니다.
고등학교 교육은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니라는거죠.
의무교육이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니란겁니다. 대학못나오면 다 제대로 못배운 사람들인가요.
(국민들중에 초,중학교 교육밖에 받지못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고졸이 제대로 된 교육을 못받았다 하면 이런국민들은 뭡니까?)
저렇게 발언한 최병렬과 그 당은 제대로 땀 흘려 일해본적도 없고,
노동이란걸 직접 해본적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사람들이 교육수준 운운하고 대학타령 한다는게 얼마나 웃긴일인가요.
서울대, 연고대 나왔다는 교육수준 제대로 된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하는 짓거리가 탄핵입니다.
6-3.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때 선봉자 역할을 한 '탄핵 5인방'
1) 박관용 당시 국회의장
2)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
3) 홍사덕 당시 한나라당 총무
4) 조순형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표
5) 유용태 당시 새천년민주당 원내총무
(이 5인방은 탄핵역풍으로 정치권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7.
탄핵안이 발의 된 2004년 03월 09일.
국민을 상대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탄핵반대는 65.2% 찬성은 30.9%였습니다.
(노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 60.6%, 사과가 필요없다는 의견은 30.1%)
즉, 선거법에 위반되는것은 사과하되 대통령자리를 내놓으란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자기들끼리, 자기마음대로 대통령을 탄핵시킵니다.
국민을 철저하게 무시하고요.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탄핵은 한나라당 뿐만아니라 민주당이 함께 한겁니다.
이후 전국에서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들이 모여 서울광화문 등에서 '탄핵반대 촛불집회'가 열립니다.
어린아이, 할아버지, 할머니, 아줌마, 아저씨, 직장인, 학생 모두가 나와서 촛불을 듭니다.
(이때 모인 국민들을 빗대어 일베에서 촛불좀비라는 저급한 단어를 쓰는 것임)
그리고 얼마 후 총선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역풍을 맞습니다.
탄핵가결 후 일주일이 지난 2004년 03월 17일.
MBC 여론조사에 의하면 정당 지지율은
열린우리당 50%, 한나라당 13.7% 민주당 4.4%(ㅋㅋㅋ)로 역변합니다.
이때 민심이 제대로 등을 돌리면서, '탄돌이'(노무현 탄핵을 등에업고 당선된 의원들)가 탄생합니다.
물론 이 탄돌이중에 좋은의원, 제대로 된 의원도 있습니다만, 이상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국민들의 분노에 올라타고 당선된 기회주의자도 일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8.
그러나, 탄핵 한달 후인 03월 26일.
탄핵열풍이 조금 가라앉는듯 하던 시점...
당시 열린우리당 대표 정동영이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인폄하발언을 합니다.
실수를 했지요-_-;; (요즘은 그럭저럭 잘 하고있지만)
뭐, 이 발언자체는 노무현과는 별개의 일이겠지만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50%까지 올랐고,
총선에서 확실한 승리를 보장받고 있을 때.
박차를 가하고있던 열린우리당 지지율에 정동영이 찬물을 끼얹은 셈이죠.
이건 굳이 쓸 필요는 없는것이긴 한데, 그래도 있는 사실 그대로 다 씁니다.
9.
이때 최병렬이 탄핵에 책임지고 사퇴를 합니다. (뭘 책임진건지는 모르겠음)
최병렬이 떠난자리엔 한나라당의 구원투수, '박근혜'가 올라옵니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박근혜를 앞세워 천막당사쇼를 하죠.
(이 기획을 윤여준이 한겁니다. 박근혜가 한게 아닙니다)
박근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민들에게 보여주려고 이러는것 아니다.
새롭게 설계를 해서 한나라당이 거듭날때까지 여기를 떠나지 않겠다" 라고요.
물론 총선이 끝나자마자 바로 철수합니다.
선거끝나니 바로 거듭나는 신기한 당입니다.ㅎㅎ
얼마 후, 17대 국회의원 총선이 치뤄집니다.
탄핵소추안 표결때
한나라, 민주당에 의해 국회밖으로 끌려나갔던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고작 47석이었습니다.
1년간 여소야대로 운영되었죠.
그런데. 탄핵역풍으로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무려 152석을 얻습니다.
그러면서 원내 1당에 오르게 됩니다.
또한, 한나라당은 참패가 예상되었으나 탄핵을 저지르고도 불구하고 무려 121석을 얻습니다.
시체가 나와도 당선된다는 한나라당 즉 새누리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인 경상도 덕분이죠.
아, 새천년 민주당은 말그대로 새가 되었습니다.
9석을 얻어 제4당으로 전락합니다.
개작살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노통의 업무는 정지상태였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6명이 탄핵소추안에 찬성을 하면 대통령직은 파면 되고,
5명 이하일 경우 기각이 되는것이었죠.
10.
2004년 5월 14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된지 2달만에 헌재에서 기각판정을 받습니다.
그리고 노무현은 다시 대통령직으로 복귀합니다.
노무현대통령이 복귀한 뒤,
총선에 승리한 열우당은 제1당이 되어 대통령과 청와대의 날개가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안타까운것은 노무현의 리더쉽입니다.
국민들의 지지로 민주화 이후 최초로
역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최초로 원내 과반을 차지하였고,
우파가 아닌 좌파가 제1여당이 되어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개혁을 이루어 내지는 못합니다.
물론 노무현대통령 한 사람만의 무능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열린우리당이 원내과반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탄돌이'들은 제 각각 생각이 달랐던 것이지요.
한마디로 '노무현정신으로 똘똘 뭉친사람들'이 아닌
당선을 위해 노무현을 등에 업었던 기회주의자들'이 있었단겁니다.
한나라당의 반대와 열우당에 숨은 기회주의 탄돌이들 덕에
사학법개정, 과거사법, 친일청산법, 등 개정안과 법은 차례로 무산됩니다.
노무현의 무능함탓인지, 따라주지않는 여당탓인지, 실정탓인지,
보수언론의 발목잡기 탓인지,
그 이후에 있었던 선거는 노무현대통령 말씀에 의하면 '판판이 깨지게' 됩니다.
그리고 참여정부는 막을 내립니다.
11.
지금부터는 이 참여정부의 공과 과를 살펴보겠습니다.
2007년 12월 19일. 대선에서 이명박이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됩니다.
(물론 투표율은 저조했음)
이명박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던 2008년 02월 25일.
노무현은 자신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로 돌아갑니다.
역대대통령들 고향이 모두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귀향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이 처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간 대통령이었죠.
노무현이 평소에 지역감정 척결, 지방분권실현을 꿈꿔온 사람이었기에
귀향은 박수받아야 할 일이라고 국민들도 평가합니다.
전 대통령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가
'상왕정치', '세력,권력유지'를 위해 서울에 거점을 만드는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입니다.
봉하마을로 돌아갈때 국민들은 모두 박수를 쳐줍니다.
환영인파만 1만 2천여명이 모였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이 봉하에 도착해서 한 첫마디가 그 유명한 '야 기분좋다'입니다. ㅎㅎ
이 좋은기분이 한동안 유지되면서 쓰레기줍고, 하천정비하고, 오리농법 등
여러가지 환경활동을 시작하고 국민들하고 대화도 시작합니다.
이렇게 봉하마을은 관광명소가 됩니다.
기득권들은 '쟤 뭐할려고 저러는거 아닌가, 뭔가 꿍꿍이가 있는게 아닌가' 하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으나,
사람들이 대통령님 나오세요~ 하면 나와서 인사하고 얘기나누고 사진도 찍으며,
그냥 그리 살았습니다.
그 전에 노무현 대통령 재직기간엔 노무현씹는게 국민스포츠였는데..
퇴임하고나니 사람들이 노무현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대통령할땐 그렇게 나를 욕하더니 대통령 그만두고나니까 내가 좋대요~" 하는
노무현의 말이 그래서 나온겁니다.ㅎㅎ
그 후로도 사람들은 꾸준히 봉하마을을 찾아옵니다.
평일엔 1만명 주말엔 3만명정도로 인산인해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봉하마을은 정말 외진곳이었고,
대중교통으로 가기는 정말 불편한 곳이었습니다.
(지금보다 열악했음)
그런데도 사람들이 자꾸 찾아오니까 기자들이 노무현에게 묻습니다.
고향에서의 생활에 만족감이 있으시냐,요즘 행복하시냐? 하니까,
노무현은 아주 행복하다고 대답을 했었죠.
이때만해도 이렇게 그냥 평범하게 쭉 살아가실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정부여당과 보수언론들은 꼴깝한다고 생각하며 노무현에게 살살 시비를 걸기 시작합니다.
보수언론과 정부의 최병렬을 비롯한 카르텔들은
노무현이 자기네 위에서 대통령을 했다는걸 참을수가 없었던거죠.
대학도 안나온 사람이 대통령하는게 눈꼴시렵고 보기가 싫었던겁니다.
11-1.
그래서. 2008년 06월. 청와대에서 '국가기록물 유출논란'의혹을 제기합니다.
노무현대통령이 퇴임직전에 국가기밀이 담긴 기록물을 봉하마을로 빼돌렸다는거죠.
이에 대해 노무현이 반박합니다.
전직대통령은 국가기록물을 볼 권리가 있다.
이것들을 보려 매일 성남에 갈수는 없지않느냐 하면서,
반환할테니 그럼 온라인으로라도 볼수있게 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물론 청와대와 보수언론들은 콧방귀를 끼며 들은척도 안합니다.
그냥 무시하는거지요.
아, 참고로 노무현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기록에 대한 상당한 애착이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역대대통령들의 기록을 모두 합쳐도 노무현 참여정부시절 기록보다 적습니다)
역사의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이 기록이 가장 중요합니다.
전직대통령들은 퇴임과 동시에 거의 모든자료를 파기하고,
새정부에 자료를 넘겨주지 않았던게 일반적이었지요.
그러나
노무현은 모든기록과 자료를 문서화, DB화까지해서 이명박정권에 모든것을 다 넘겨줍니다.
특히 청와대 e-지원시스템은 참여정부당시 노무현이 개발하고 특허까지 받은 프로그램입니다.
(노무현대통령이 프로그램까지 직접 짰다고 하네요)
MB로 정권이 넘어간 후, 이 e-지원에 관한 재밌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노무현이 컴퓨터를 못쓰게 만들어놨다'고
ㅋㅋㅋㅋㅋ
실상은 이렇습니다.
대통령이 보는 컴퓨터는 보안이 아주 중요합니다.
홍채인식, 지문인식 등 중복잠금장치를 걸어놓습니다.
이게 잠금인지 몰라서 접속자체를 못했던겁니다 -_-;;; 실화입니다.
자, 그럼 노무현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물려주었는지 볼까요?
인계집, 정책백서 77권 / 552개 업무메뉴얼 / 보고서 5만6천여건 / 시청각자료 60만건 /
역대대통령선물 5천여점 등 이 방대한 기록을 모두 mb정권에 물려줬습니다.
심지어 참여정부가 이걸 어떻게 잘물려줄까 TF팀까지 구성해서 물려주었지요.
그런데 노무현이 국가기밀을 빼돌렸다고 일부러 이렇게 했다고 우깁니다.
우길걸 우기세요.
MB정부는 그냥 기록같은건 보기싫고 볼 줄도 몰랐던겁니다.
일화 하나를 더 소개하자면,
2008 03월 15일 행안부업무보고에 청와대에 들어간 25일 저녁에
'청와대 내 컴퓨터가 열흘넘게 작동이 안되고있다',
'인수인계를 제대로 못받아서 그렇다'는 보고가 들어옵니다.
물론 인수인계는 제대로 끝난 상태였고, 비밀번호 풀 줄을 몰랐던거죠.
난생 처음해보니 할 줄 몰랐던겁니다.
PC방도 카드주면 번호는 쳐야 들어가는데 말이죠.ㅎㅎ
현정부와 전정부가 처음으로 마찰이 생깁니다.
이놈의 로그인때문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MB정부가 자신들이 잘 못했던것을 참여정부로, 과거로 토스를 해버립니다.
모든것은 '노무현탓이다'
실제로 모든 기록은 국가기록원에 원본으로 그대로 보관되어 있으며,
노무현이 갖고있는건 사본이었습니다.
인쇄정보가 없다는거? 그냥 개 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이 국가기밀을 빼돌렸다는 헛소리를 합니다.
그리고 노무현이 가져간 200만건이 넘는 자료가 해킹되어 있다며 주장을 했었는데,
서버는 인터넷연결이 안되어 있습니다.
서버를 통째로 들고 가지 않는 이상 해킹은 불가능한데도
언론은 이런식의 기사나 질질 싸대고,
이렇게 허위사실이 퍼져나갑니다.
참여정부에게 흠집내기를 하는겁니다.
아니면 진짜 컴퓨터를 처음보는 원시인이거나...
조중동문국 등 보수언론이 모든 기사를 이런식으로 냈죠.
참여정부가 서버를 가져갔다 뭘 했다하면서 자신들의 무능을 철저하게 감춥니다.
일이 자꾸 이렇게되니, 노무현 입장에선 어이가 없는거죠.
뭔 소리하는거지...하면서 첨엔 그냥 버팁니다.
그러다 결국 국가기록원에서 봉하마을까지 내려와 노무현을 조사하고
서버관리업체를 압수수색 하기에 이릅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여기에 보태어 국가기록물 유출권에 대해 참여정부인사 7명을 고발하겠다고 나서질않나..
한마디로 국가기록물 사본을갖고 고향으로 내려갔다는 이유로 압박을 가하는것입니다.
사실 기밀인지 뭔지는 중요하지 않은거.
그냥 갖고 꼬투리 잡을것 찾다보니 뜯을만한거 선택한겁니다.
결국 노무현 한사람을 놓고
서버업체, 참여정부 인사 7명, 주변인물, 봉하마을 등등
주변에 차례로 압박을 당하기 시작합니다.
주변사람들이 끊임없이 압박받자 노무현은 일단 알았다고 한 뒤,
현 정부와 연락하는 통로를 통해 아예 공개편지를 써버립니다.
편지의 내용을 잠시 보자면...
"법리를 가지고 다투어볼 여지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열람권을 보장 받기 위하여 협상이라도 해 볼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버텼습니다.
모두 나의 지시로 비롯된 일이니 설사 법적절차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감당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퇴직한 비서관,행정관 등 7명을 고발하겠다고 하는 마당이니 내가 어찌 더 버티겠습니까.
<중략>
이명박 대통령님
전직대통령 예우만큼은,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히 세우겠다,
전직대통령을 잘 모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질문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기록을 보고싶을때 마다 전직대통령이 천릿길을 달려 국가기록원으로 가야합니까.
그렇게 하는것이 정보화시대에 맞는 열람의 방법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하는것이 '전직대통령문화'에 맞는 방법입니까.
이명박대통령님 앞으로 게속 이렇게 하실겁니까.
<중략>
이명박대통령님, 우리 경제가 진짜 위기라는 글들은 읽고 계신지요.
참여정부시절 경제를 파탄이라 하던 사람들이 지금 이 위기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은 대통령 외 참모들이 전직대통령과 정치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
그정도는 잘 알고 계실거라 믿습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싸움에서 물러섭니다.
하나님께서 큰 지혜를 내리기시를 기원합니다."
-끝-
편지에도 나와있지만 노무현이 참여정부경제가 파탄이라고 합니다.
물론 노무현본인이 그렇게 인정하는게 아니라
한나라당이 노무현은 경제파탄의 주범이라고 몰아세웠죠. 항상.
근데 이때 진보도 같이 파탄이라고 합니다 -_-
이렇게 노무현이 이명박정부한테 당하고있을 때
자신을 진보라고 부르는 사람들조차도 아무말도 안합니다.
노무현깔때처럼 왜 이명박은 못까는걸까요. 노무현이 만만한거겠죠. 고졸이니까.
참고로, 참여정부의 경제는 파탄이 아니었습니다.
경제파탄은 YS와 MB 두 분의 필살기.
11-2.
다시 돌아가서, 국가기록물유출논란이 어느정도 사그러들자마자 또 시끄러워집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저가 수천억을 들여 지었다는
그 이름도 유명한 아방궁~ 노방궁사건이 터집니다.
국가예산 투입해서 혈세낭비한다며 한나라당이 난리난리를 치지요.
현장방문하라고. 조사해보라고.
그러면서 보수언론과 함께 잘근잘근 씹어댑니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홍준표를 중심으로 막 던지기 시작합니다.
아니면 말고~ 하는식의 발언들이 기사화되고 국민들은 또 속고.
봉하가 전직대통령의 사유지냐, 자기땅이냐,
김영삼 대통령 집 앞엔 주차 할 곳도 없다, 전직대통령들 살고있는 현황을 살펴봐라~
노무현처럼 아방궁 지어서 사는 사람이 없다하며 본격적으로 노무현을 깝니다.
그 얘기를 옆에서 듣고있던 다른 의원은 산 깊숙히 들어가면 골프연습장까지 만들어 놨고,
지하에 아방궁을 만들어 그 안은 볼 수가 없고 커다란 팬 시스템을 만들어 놨다 등등
튀어나오는대로 내뱉는 지경에 이릅니다.
없는사실을 얘기한 거니 튀어 나오는 대로 얘기한 거 맞습니다.
그리고 사저 뒤엔 골프장을 지을만한 대지도 없습니다.
임야밀어서 골프장 짓는게 뭐 그리 쉬운 줄 아시나요.
여기서 홍준표의 이야기를 한번 보겠습니다.
위에 상도동에 위치한 YS의 사저와 비교했으니, 살펴보죠.
일단.. 홍준표가 바보인가요?
상도동은 서울입니다. 봉하마을은 경남 산골입니다.
어떻게 이걸 동등하게 놓고 비교를 할수가 있나 싶네요.
공시지가 자체가 다른 땅입니다. 토지이용계획이나 등본 좀 떼보시지...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땅값이 평준화 되었나요?
그리고 대한민국인구 1/5이 거주하는 서울은 원래 주차가 빡빡합니다.
특히 상도동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네라서 더 그렇구요.
이건 그냥 공격성 발언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YS가 상도동 자택팔고 거제도 내려간다면 노방궁 10개도 짓습니다~
결국 노무현 사저를 직접 설계한 건축가 정기용씨가 발언하겠다고 자진해서 나섭니다.
(유명한분입니다. 제가 건축을 하는 사람이라)
내가 집을 지었으니 내가 반박하겠다하니 노무현은 참으라고 합니다.
홍준표와 노무현의 그릇차이지요.
홍준표를 까는게 아니라 그렇다는겁니다.
(만약 저같았으면 내 집 설계한사람이 아니라는데 니들이 왜 난리냐고 반박했을겁니다.ㅎㅎ)
아, 노무현 사저보고 노방궁이라고 기사 싸대던 언론들.
왜 노무현대통령 서거후에 사저를 공개했을때 내부사진은 기사에 싣지않는지 궁금하네요.
그렇게 아방궁 노방궁 골프연습장이니 초호화니 떠들더니
집안 공개하니까 왜 조용한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냥 계속 노무현탓하는겁니다.
정권이 2번이나 바뀌었음에도 MB도 참여정부탓 박근혜도 참여정부탓..
전 정권 인수인계 어쩌고저쩌고 우파인사 씨가 말랐다 쇠고기문제 쌀직불제
그것도 다 참여정부탓이고 입만열면 '참여정부 탓'입니다.
보수가 다시 집권했으면 그냥 잘하면 됩니다.
누가 못해서 내가 못했네 하는말 말고, 정권을 잡았으면 방향틀어서 진행하면 됩니다.
(사실 이런데는 언론도 한몫하죠. mb탓이 아니라 노무현탓이다~ 아방궁이라더라 ~
그럼 국민들은 또 부화뇌동해서 아~그렇구나~하고.
곧이 곧대로믿는 국민들이 많기때문에, 언론의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11-3.
그런데 여기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사건의 단초가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노무현의 형, 노건평씨.
노대통령 퇴임 후,
아니면 말고식으로 계속 비난을 던지던 정부여당에게 제대로 발목을 잡힙니다.
노건평이 세종증권이 농협에 인수되도록 도와주고 금품을 받은혐의로
2008년 12월 04일 구속됩니다.
노건평씨는 계속 혐의를 부인하지만,
계속 증거가 나오고 증언이 나오니까 결국 시인을 합니다.
정권의 도덕성을 가장 중요시하고 어느 대통령보다 깨끗하다고 자부했던 노무현에게
형의 구속은 엄청난 충격으로 닥쳐왔겠지요.
형문제로 의기소침해 유구무언이 되버립니다.
그러나, 노무현을 코너로 몰아넣기 위한 사건은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11-4.
태광실업 박연차씨가 구속이 되고, 본격적으로 '노무현 사냥'이 시작됩니다.
부산경남지방에서 '박연차 돈 안받은 사람없다' 할 정도로 박연차는 원래 소문이 파다했고,
실례로 박연차는 2002년 대선당시 노무현캠프에 있었던
현재 충남도지사 안희정에게 7억원의 불법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벌금형을 맞은 전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명박정부가 들어서고 태광실업은 세무조사를 받고,
2008년 12월 12일에 박연차가 구속됩니다.
이때 박연차가 하나하나 불기 시작하면서,
이것을 기초로 검찰이 전방위적으로 참여정부인사를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이광재, 민정수석 박정규, 서갑원, 강금원 창신섬유회장, 정상문 청와대 총무비서관,
노무현 조카사위 연철호 등 모두 조사를 받았죠.
참여정부의 인사들이 박연차의 한마디에 줄줄이 비엔나로 불려갑니다.
노무현 개인의 비리나 잘못이 아닌 측근들의 비리입니다.
노무현은 속상해했고 마음아파했습니다.
일례로 강금원씨가 구속되니까 강금원씨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홈페이지에 올립니다.
자기때문에 이런일이 생긴것이라고, 고초를 당한다고
미안한 마음에 글을 올리는것을 시작으로
그 이후에도 여러번 글을 올리면서,
홈페이지는 노무현의 심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통로가 됩니다.
(글전문)
"할 말이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나의 수족노릇을 하던 사람들이 나로인하여 백수가 되었는데
나는 아무 대책도 세울수가 없었다.
강회장이 나서서 그사람들을 도왔다.
그동안 고맙다는 인사도 한 일이 없었는데 다시 조사를 받고있으니 참으로 미안하다.
그런데 무슨말을 할 수가 없다. 아는사람들은 그의 건강을 걱정한다.
제발 제때 늦지않게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다시 볼수있기를 바란다."
결국 강회장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서 사망합니다.
이런겁니다.
노무현이 이런마음을 먹게 만들기 위해서, 검찰들이 수사방향을 이렇게 잡는거죠.
편파수사.
근본을 따져보면 예전에 노무현대통령 당시
검찰을 정치권으로부터 확실히 독립시키기위해 의지를 갖고 있었지만 결국 실패했었습니다.
검찰은 이걸 계기로 노무현정권에 더욱 더 칼날을 대는겁니다.
그것도 노무현 한사람을 괴롭히기엔 꼬투리가 없으니,
주변을 찌르고 공격하는 방식으로 노무현을 고립시킵니다.
*이명박이 노무현을 어떻게 죽였는지 알려주는 만화
이때 정상문비서관이 체포되어 박연차에게 돈받았다고 진술합니다.
노무현은 또 사과문을 올립니다.
정비서관의 혐의가 정비서관이 한게 아니라
'저희 집' 즉 권양숙여사가 돈을 받아 사용했다고 씁니다.
완전 융단폭격을 맞습니다.
한나라 민주 할 것 없이 민노당, 진보신당, 진보언론, 진보인사 그리고 국민들.
모두 노무현에게 총공격을 가합니다.
깨끗하다 했더니 나중에 알고보니 부인이 돈받았네 하는 이야기지요.
처음에 태광실업을 찌를때부터 이 모든 타겟의 중심은 노무현이란 소리가 들리고 있었습니다.
정치라는게 모두가 100% 깨끗할수는 없습니다.
노무현 하나가 있고, 그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인적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청렴치를 가질 수가 없는거지요.
가장 가까운 형도 못막았으니..
근데 중요한것은, 박연차는 노무현에게만 돈을 댄 것이 아닙니다.
여,야 전방위로 이루어진 로비이고.
위에도 언급했지만 박연차 돈 안받은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여기저기 돈을 뿌리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이 박연차는 도덕적으로 커버를 할 수 없는 정도의 과거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런식으로 노무현만 관계가 있는것처럼 직접적인 고리를 만들고 주변을 칼질하는건,
노무현을 고립시키기 위함이겠죠.
노무현은 시간이 갈 수록 아무하고도 이야기 할 수 없는 상황이 잦아집니다.
결국 노대통령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사과하고 하는 식의 잠 못드는 날들이 계속됩니다.
11-5.
2009년 04월11일에 권양숙여사가 부산지검에서 조사를 받게됩니다.
이 자리에서 권여사는 박연차로부터 100만달러 외에
정상문이 따로 받아서 썼다던 3억원도 자기가 받아서 썼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이 돈은 빚 갚는데 쓰고,
이러한 사실을 노무현대통령은 모른다고 진술하였으나. 검찰은 믿지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나라 검찰의 위대함이 나옵니다.
상식을 들먹입니다. ㅎㅎㅎㅎ
자료조사해서 증거를 들이밀어야 할 검찰이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되냐?며 상식타령을 합니다.
그러나 상식타령을 하던 검찰이 상식적으로 조사하지 않았다는게 더 큰 문제죠.
당시 검찰내부에서도 말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권양숙여사의 이 진술이 나온뒤,
박연차 회장의 3억은 권여사에게 전달되지 않고
정상문 청와대 비서관의 차명계좌에 그대로 남아 있는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04월 12일 노무현의 아들인 노건호가 검찰에 소환됩니다.
노무현대통령은 다시 한번 자신의 입장을 홈페이지에 올립니다.
이번엔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해명과 방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내가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 하는데 참으로 부끄럽고 구차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민망스러운 이야기 하지말고
내가 그냥 지고가자 사람들과 의논도 해봤으나 결국 사실대로 가기로 했습니다.
도덕적 책임을 지고 비난을 받는일과, 범죄를 저지르는일은 차원이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에게 주는 실망과 배신감의 크기도 다르고
역사적 사실로서의 의미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사실대로 가는것이 원칙이자 최상의 전략이라는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구차하지만 몰랐던 일은, 몰랐다고 말하기로 했습니다."
이때 일각에서 그런애기가 나왔죠.
'아~ 노무현 치사하다. 자기가 받은걸 와이프가 받았다고 책임을 떠넘긴다' 라고.
근데 이거 잘 봐야합니다.
여러분도 반성하셔야 합니다.
당시 노무현이 융단폭격을 맞을때 국민들의 폭격도 함께 맞은것입니다.
아무도 노무현의 말을 안들어줬어요.
안믿어줬어요. ..
그러니까 특유의 원칙론으로 검찰에게 언플하지말고 증거대라고 입장을 밝힌겁니다.
박연차의 진술을 제외하곤 증거가 하나도 없었던거죠.
'내가 이명박대통령한테 한 10억 줬는데?' 라고 했다면,
이 말만 갖고 증거없이 다 잡아들인겁니다.
증거나 자료조사는 안하고 진술로만.
11-6.
2009년 04월 30일.
결국엔 노무현대통령까지 검찰에 소환됩니다.
치욕적인 순간이지요.
어느정권보다도 정당성과 명분이 있었고, 도덕성이 가장 큰 무기였던 정권이.
결국 전두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권처럼 '보이게' 되었던 겁니다.
이게 검찰들이 가장 원했던 그림입니다.
혐의의 유무보다는 노무현에 아침에 검찰청으로 가는 그 그림 하나만 원했던거죠. 망신주기.
그리고는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합니다.
헬기까지 대동해서 어느휴게소에서 섰다, 어느휴게소에서 뭘먹었다, 화장실을 갔다하며.
아주 신나서 씹어댔죠.
그리고 노무현대통령은 아침부터 그 다음날까지 빡세게 조사를 당합니다.
자백을 받으려 노력했지만,
노무현은 계속해서 130만달러가 전부고 나는 모르는 일이었고
아들에게 간 500만달러는 호의적으로 건넨 투자비용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검찰입장에서는 갑갑하죠.
노무현을 대검찰청까지 불러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증거없이 오로지 박연차 진술 단 하나뿐이었는데.
노무현이 아니라고 하니까 자기들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거죠.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똥줄탄 검찰은 박연차와 노무현의 대질심문을 하려합니다.
그런데 이것마저 노무현의 거부로 못하게 될 뻔 했으나,
검찰의 끈질긴(?) 의지로 대질심문을 거부하는 노무현에게
'그럼 인사라도 하라'며 박연차와 얼굴을 맞대게 합니다.
(진짜 지독하고 나쁜놈들입니다)
이 모든건 언론 플레이를 위해서 입니다.
이렇게되면 박연차가 혹은 노무현대통령이 서로에게 "너 나한테 왜이러는거야?" 할 줄 알았거든요.
둘이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그림이 나와야 본인들 수사가 타당하다는걸 입증할 수 있거든요.
망신을 줘야하니까.
결국 노무현과 박연차가 만납니다.
노무현이 박연차에게 말 합니다.
"고생이 많지요. 자유로워지면 만납시다. 대질은 내가 안한다고 했습니다." 며 박연차를 위로합니다.
검찰은 조급해지기 시작합니다.
자기들의 생각하곤 전혀 반대로 흘러가니까요.
(서로 상대 때문이라고 싸우는 그림을 원했음)
박연차도 고문만 안당했을 뿐이지 온갖 협박을 다들었고,
노무현은 반평생 정치를 했던 변호사 출신입니다.
이런 노무현이 박연차가 어떤 상황인지 모를까요.
검찰은 역시나 별 소득을 얻지못했고, 노무현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더이상 잡아둘 명분이 없으니까.
어차피 검찰은 자기들이 원하는것을 한거거든요.
전직대통령 소환해서 망신주고 전두환과 동급만들기.
절반이상 성공한겁니다.
이때 검찰은 또 하나 뭣 같은짓을 합니다.
박연차가 노무현대통령 환갑에 1억짜리 명품시계를 줬다고 언론에 던집니다.
이 사건과 무관한데도 같이 언론에나고 같이 처리되는식의,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어긋난다는것을 본인들이 제일 잘 알면서도 막 던집니다.
노무현 검찰소환 소식을 내보내고, 그 뒤에다 노무현 1억 시계를 기사에 쓰는겁니다.
보수언론들은 쾌재를 부르며 신나게 기사를 쓰기 시작합니다.
1억짜리 시계가 뭐라더라, 어디다 버렸다더라, 어쩌고 저쩌고 신나게 씹어댑니다.
처음엔 대응을 않던 봉하마을에서 반발합니다. 그만하라고.
검찰은 검찰내부의 빨대들이 언론에 흘린거라 얘기를 합니다.
근데 그 빨대가 누군지는 모른다며 조선일보에 소스를 준건 우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입니다.
대한민국 검찰이라는 조직은
들어가는 순간부터 위에서 시키면 까라면 까야하는 상명하복이 검찰의 제1원칙입니다.
어떤조직보다 페쇄성이 강한 조직이지요.
일개 일선검사가 대검중수부장 등 수뇌부가 모르는 상태에서
허락도없이 언론에 소스를 줬다? 말도 안되는 소립니다.
참 복잡하고 길지요.
사건은 단순합니다.
노무현 망신주기에서 출발 -> 노무현 망신주기로 끝나는겁니다.
사저를 도청하고, 주변사람들 괴롭히고,
가장 자부했던 도덕성에 브레이크를 거는것.
검찰 아니 MB와 집권여당. 권력이 원하는 일은 다 한 셈입니다.
*시계사건과 도청설 관련 링크
☞ http://c.hani.co.kr/hantoma/1811055
12.
자, 그럼 이제
이렇게 진행된 검찰의 수사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조목조목 짚어보겠습니다.
12-1.
진술하나만으로 증거도 없이 마구잡이로 주변을 잡아들인다?
퇴임과 동시에 노무현을 겨냥한 수사는 '국세청'에서 시작됩니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그들의 가장 무서운 무기인 '세무조사' 칼을 꺼내들고....
노무현과 연관된 기업은 모조리 세무조사를 받습니다.
(서거 후 애초부터 타겟이 노무현이었고, 일부러 사주했다는것은 이미 다 밝혀진 것입니다)
노무현의 오랜 후원자 - 박연차(태광실업)
(→ 박연차는 노무현의 후원자만이 아니었다는 것 꼭 기억하십시오.)
노무현의 고등학교 동창 - 제주도에 골프장 하는 친구까지 수사
노통허리를 수술해주셨던 우리들병원,
노통이 자주가던 삼계탕집 토속촌까지 세무조사를 받습니다.
(제대로 미쳤음 정말)
노무현이 마시던 공기까지 수사할 기세.
이렇게 밥먹던 집까지 추징금을 맞으니까 노무현 옆에 아무도 남지않게 됩니다.
남을수가 없죠.
원래 싸움의 상대가 꼿꼿하고 빈틈이 없으면
그 주변의 지인, 친척, 가족 등을 족치는게 싸움의 비법입니다.
그래서 검찰과 국세청, 정부가 그런 계책을 쓴것이지요.
주위사람들이 힘든시간을 보내면 그 사람들이 누구를 원망할까요.
당연히 노무현을 원망하겠죠.
저 양반 때문에 내가 이리 힘들다고 ..
그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을까요.
노무현 좋아하고 노무현 지지해준것 뿐 인데 삼계탕집까지 조사를 받으니까.
이중에서도 박연차의 태광실업이 국세청의 가장 큰 괘거였습니다.
국세청이 저인망으로 태광실업을 훑죠.
검찰은 증거도 없으면서 진술하나로
이광재, 박정규, 이강철, 노건평, 정상문 등 모두 소환하죠.
권양숙여사가 돈 받은 것 자백하죠.
아주 기세등등하게 노무현 자백도 시간문제라 생각했던것이겠지요.
그런데 노무현은 검찰들 마음대로 움직여주질 않습니다.
"증거를 가지고 와라" 하니 검찰이 바빠집니다.ㅎㅎ
참고로 검찰은 이것 하나를 꼭 기억해야합니다.
박정희가 오까모토 미노루라고 했던 것.
법적으로 대응하려면 이이제이와 제 편을 들어줘야 합니다.
이이제이 출연자와 저도 책보고 남한테 들은 것가지고 말한거니까,
증거없는 박연차 진술처럼 꼭~ 우리편 들어줘야만 합니다.
12-2.
검찰 조사과정은 합리적, 상식적이었나?
태광실업의 세무조사를 시작으로 비롯된 이 검찰조사가 얼마나 어이없는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닥치는대로 남의 계좌를 엿봤습니다.
심지어 송기인신부의 계좌까지 샅샅히 뒤져
8~20만원정도의 소액까지도 일일이 출처를 물었습니다.
검찰들 참 한가하죠?
이것뿐만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메일, 통화기록까지 모두 훔쳐봤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증거를 잡지 못합니다.
검찰은 아무런 득도 없이 명분만 앞세운 속빈 조사를 한것이지요.
별 소득이 없자 검찰은 언론플레이를 선택합니다.
조사내용을 속속들이 빨대를 통해 언론에 흘리고,
도청한 이야기를 마치 진술한것처럼 기사를 내보냅니다.
대통령흠집내고 망신주고 권양숙이 받은 돈도 한화로 계산하지않고 일부러 달러로 내보내고 뭐..
더 많아 보이라고요.
이런 언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나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지언정,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검찰은 드디어 무리수를 두기 시작합니다.
바로 '포괄적 뇌물죄'를 꺼내듭니다.
법전엔 없는 말입니다.
아무리 뒤져도 뇌물죄로 넣을수가 없으니, 앞에다 '포괄'을 갖다붙인셈이죠.
직접 돈 안받았더라도 포괄적으로 보면 받았다며..ㅋㅋ
아, 그럼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이 5공때, 군사정권때 갖다바친 뇌물은 뇌물도 아닌것인지?
이미 공소시효가 끝났긴하지만 의문스럽네요.
전 정권에 이 죄를 적용하면 정말 줄줄이 비엔나처럼 딸려 나올텐데 말이지요.
우리검찰은 왜!
그때는 아무소리 못하다가 노무현이 퇴임하니 이 난리일까요?
'잘 걸렸다' 싶은겁니다.
권력의 입장에서 노무현은 재수가 없겠죠.
게다가 힘도없고 백도없으니 만만하고.
더 중요한것은,
이 포괄적 뇌물죄로 노무현을 옭아매기 위해서는
권여사가 받은돈을 노무현이 알고있어야 이 죄가 성립됩니다.
그런데 노무현은 몰랐죠.
그러니까 검찰이 상식타령을 한겁니다.
와이프가 돈을 받았는데~ 남편이 그걸 모를수가있냐~ 하며 상식타령을 하지요.
자신들이 상식적으로 수사하지 않은건 괜찮고
와이프 돈받은걸 남편이 몰랐다는건 비상식적이란 이야기 ㅋㅋㅋㅋ
이명박대통령 BBK때 영상있었죠?
"BBK는 내가 설립했다" 고 이명박 본인 입으로 말했는데도 검찰은 무혐의를 내렸습니다.
참 상식적입니다.
사람 봐가며 수사하는겁니다.
누구의 죄가 어떻던 상관없이 힘없는 놈은 그냥 족치는거.
하나 더 볼까요.
노무현대통령과 똑같은 케이스가 있습니다.
한나라당 김동영의원의 부인이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서초구청장 공천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4억 가량의 돈을 받았습니다.
근데 검찰은 김동영의원을 구속하지 않았습니다.
김동영이 자신의 아내가 돈을 받았던걸 '몰랐다' 고 했거든요.
그래서 검찰은 김동영의원과 무관하게 그 아내만 사법처리를 합니다.
김의원이 '몰랐다'고 했으니까요.
노무현대통령과 똑같은 일이 벌어졌음에도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검찰입니다.
자신들이 외치는 상식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거기다 김동영의원의 아내가 돈을 받은것은 '대가성'또한 있는 사건입니다.
공천을 댓가로. 그러나 권여사는 대가성도 없습니다.
그냥 투자였어요.
무슨 자리를 주겠다 권력을 주겠다가 아니었지요.
이걸 배제하더라도 검찰의 수사는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래 조사가 끝나면 구속여부를 결정하는것이 검찰의 일입니다.
노무현과 그 측근들에게 죄가 있으면 증거를 제시해서 유죄로 결정짓고,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되는것입니다.
그런데 계속 질질끕니다.
왜 일까요?
그냥 망신주기입니다 이것도.
소환조사가 끝나고 3주가 넘도록 여부를 결정하지 않아서,
구속이다 아니다, 조사를한다 안한다 등등 온갖 추측성기사가 난무했죠.
유죄냐 아니냐 다시 불려간다더라, 권양숙도 다시 조사받는다더라
오만가지 카더라가 떠돌고 언플은 계속됩니다.
억측과 비난은 더 거세졌습니다.
노대통령으로서는 괴로운 시간의 연속이었겠죠.
13.
그리고 그날. 2009년 0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합니다.
이광재, 안희정, 서갑원, 정상문, 이강철, 박정규, 고등학교 친구, 강금원, 박연차, 형, 부인,
아들, 딸, 조카사위, 처남, 등등
노무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노무현 주변인'이라는 이유로 힘들어지기 시작하고,
참여정부의 근간이라 할 수있는 도덕성에 자꾸만 금이 갑니다.
언론과 온 국민들이 노무현을 욕했었지요.
증거나 자료같은것은 중요치 않았습니다.
그때 혹시 기사말고 '증거'보신분 계신가요?
언론에서 노무현을 나쁜놈이라하면 국민들도 나쁜놈이구나~ 하고 믿었던거죠.
아무도 '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거죠.
아마 노무현은 국민에 대해 실망감도 느꼈을거고
미안함, 책임감 등 만감이 교차했을것 입니다.
이러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노무현을 짓눌렀고,
결국 모든것이 '나 때문에' 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겠죠.
서거 몇일전부터 노무현대통령은 잠도 못 주무셨다고 하더군요.
많이 힘들어 하셨다고 합니다.
최초의 인터넷대통령, 서민대통령이라 불렸던 노무현대통령은..
결국 가족과 국민들을 남기고 먼저 떠나게 됩니다.
노무현대통령의 형 노건평씨는 얼마 전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차명계좌도 확인되지 않았죠.
기사에 났었는데 몇분이나 보셨을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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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대통령의 탄핵부터 서거까지 대략적인 전말입니다.
대충 이해가 가시나요?
제가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쓰는 이유는 정의롭지 않음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입니다.
법은 항상 공정하고 똑같은 잣대에서 적용되어야 하고 적용받아야 하지요.
하지만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은 행동을해도 다른 조치를 받고,
노무현은 탄핵이라는 말도 안되는 일을 겪게 됩니다.
측근비리나 돈관계 또한 마찬가집니다.
박정희 금고속의 돈, 전두환 수많은 사업, 노태우가 받아먹은 돈,
거기에 MB가 말아먹은 사업과 노무현에 비교 할 수 없는 MB의 측근 비리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있습니다.
임기중에도 수시로 터져나왔으니까요.
그런데. 탄핵당했나요?
임기끝나고 대통령까지 직접 소환해 조사했나요?
전두환요?
지금도 세금으로 경호받고 잘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골프여행다니며 호위호식하고 삽니다.
도대체 왜 노무현만 이런 고초를 겪었을까요?
보수세력은 살아있는 권력이라 기득권이라
거기에 대해선 아무 말도 못하고 꺼내보지도 못하면서.
청와대, 국회, 검찰, 국세청 모두가 입다물고 조용히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면서
왜. 노무현은 그렇게 피의사실 공표까지 해가며 괴롭혔을까요?
진짜 보수들말고 수꼴들은 그러겠죠.
종북이라 북괴라 그렇다며 능력없어 그렇다고.
공과 과는 정확하고 똑바르게 봅시다.
그리고 노무현이 종북이면 김대중이 종북이면 노무현찍었다가 이명박찍은 사람들은 종북입니까 ?
애국보수입니까 뭡니까?
이 글을 보고도 종북 좌파라서 그렇다,
북한이 어쩌고 저쩌고 하려거든.. 그냥 70년대로 돌아가서 사세요.
잘못한건 잘못한거고 비리가 있으면 혐의를 풀거나 증거를 잡거나해서
정당하게 사법절차를 밟으면 됩니다.
제 말은 공평한 법의 기준이 왜, '사람을 봐가며 달라지냐'는것 입니다.
노무현이 탄핵당한 이유는
다른 대통령보다 일을 잘못해서 혹은 뭔가 잘못해서가 아닙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나보다 못난놈이 대통령이라서.
고졸출신에, 대학도 안나온 변호사출신에,
촌놈에다, 빽도없고, 뒤봐줄사람도 없는 주제에
언론에 쓴소리하고, 정치권에 올바른 소리만 골라하더니
대통령까지 하니까. 꼴보기 싫었던겁니다.
그런 노무현이 퇴임 후
다른대통령들 아무도 안가는 고향까지 가서 더 꼴보기 싫어 죽을 지경인데,
환경운동하고, 국민들 만나 사진찍고, 다큐멘터리 찍어가고
봉하마을 방문객은 더 더 늘어가니까.
권력의 눈에는 완전한 눈엣가시였겠죠.
이 권력이라는건 비단 새누리당, 조중동을 일컫는게 아닙니다.
다른 당, 다른 언론들 속에도 이 권력의 흐름에 줄을 대는 사람들 모두 포함입니다.
국회에선 여당이다 야당이다 서로 치고박고 니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싸우지만,
뒤에가면 다 아는사이에요.
우리나라 정치권에 있는 인사들 모두 명문고, 명문대 출신들 입니다.
즉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가 되겠죠.
국회의원 300명중에 200명이상 아니 그 이상이
동기,동문으로 국회에 함께 서식하는데,
출신이 다른 종자하나가 대통령까지 했으니 오죽했을까요.
아무리 고등학교가 평준화되고 대학서열이 사라진다지만 1%들.
그들은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가 있습니다.
* 참조 : 친노/비노/반노의 본질
☞ http://blog.naver.com/eminent8/20182159768
이것말곤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잘못으로 따지면 앞에 썼듯이 YS, MB는 더 직접적인 유세를 했었고.
한나라당 김동영의원도 마찬가지죠.
또 측근비리나 돈관계는 우리 이명박 전 대통령 따라올분 계신가요?
없습니다.
진보,보수 싫고,좋고를 떠나서 그냥 객관적인 사실관계에 의해서 말하는 겁니다.
노무현대통령을 존경하지만 잘못한 것이 있다면 벌 받아야죠.
근데 그 분은 잘못한게 없었습니다.
주변비리가 있으면 주변사람들 처벌하면 되고 죗값 받게하면 됩니다.
역대 대통령들 다 그런 모션으로 정권끝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만은 그 죗값을 혼자 치르게 된 이 과정이 "정당하지 않다"는 겁니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이지 않다는 말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보수언론, 그리고 검찰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의란 무엇입니까?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다 감사합니다.
몇분이나 끝까지 읽어주셨을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3~4일에 걸쳐 정리하고 옮겨적고 교정하고 했는데.
보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관해.
저는 개인적으로 자살,타살여부에 상관없이 재조사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서거는 23일이었는데,
조선일보 서거 배너는 어떻게 왜 무슨이유로 22일부터 만들어져 있었는지.
부엉이바위에서 떨어졌다면 전신이 다발성골절으로 피칠갑이 되어야 있어야 할
부엉이바위 아랫쪽은 왜그렇게 깨끗했던건지.
대통령을 경호하는 경호원들은 기본적인 의학상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온몸이 으스러진 사람을 업고 뛰었다는게 상식적인지.
전직 변호사출신인 노무현이 효력이없는 컴퓨터로 유서를 작성한것은
무슨 까닭인지.
그리고 노무현이 유서를 작성하고 나갔다면
왜 노무현이 집을 나간 이후의 시간에 유서가 저장되어있는지.
톨게이트 cctv에 잡힌 노무현의 팔이 왜 경찰봉으로 교체되어 있었는지. 등등
여러가지 의혹이 참 많다고 생각합니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저처럼 의문스럽게 생각하는 국민들이 어딘가엔 계시겠죠.
또한 노무현스스로 죽음을 택했다고 하더라도,
IMF로 나라경제를 말아먹은 김영삼보다 뭘 잘못해서,
그 많은 광주시민들을 죽인 전두환보다 도대체 뭘 잘못했기에.
증거도 없는 치욕스러운 조사를 받아야했는지,
잘못했다면 처벌로 끝났어야 할 일을 왜 질질끌고..
왜 그토록 노무현을 고립시켰는지,
이 나라에 과연 정의가 살아있는 것인지.
대한민국 정부와 검찰,
그리고 국민들에게도 꼭 묻고싶습니다.
▶謹 弔◀
억울하게 돌아가신 모든 님들을
추모합니다.
제 글안의 "▶謹弔◀" 마크는 "글 꾸미기용"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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