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기타정치역사

[스크랩] Re:대한민국 무술은 무예도보통지에 나와있슴다..

lionet 2014. 5. 27. 09:46

정조때 만든 이 책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부가 무술을 연구해서 집대성한 자료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에도 무서는 있지만 모두 개인이나 가문에서 만든거죠..

 

따라서 무예고보 통지는 언젠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가능성도있슴다..세계유일의 자료니까요...

 

무예도보 통지에는 24가지 무술로 정리했는데 그 중 마상6기( 말을타고 하는무술)를 뺀 나머지는 18기라고합니다. 권법과 병장기 모두 포함해서요..

 

정조가 이책을 만든이유는 군사들의 훈련을 위해서였슴다..그니까 군용무술을 연구한거죠..

 

그다음에 택견이나 수벽치기, 한풀 , 정도술 등등 민간 무술이있구요..

 

원래 우리나라가 유불선 3교의 전통이 있어서 불무도 도교의 선무도 그리고 유천도 즉 종교무술이있는데 중국도 비슷합니다. 소림사 무술을 불교무술이고 태극권은 도교무술이고 이런식이죠..

 

그리고 궁중무술도 있슴다. 역시 중국에도 마찬가지구요..그리고 그때도 지금처럼 한,중간에 무술교류가 있었구요..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씨름보다 오히려 태견시합이 더 많았다더군요. 그만큼 전통무술이 대중적으로보급이 되고있었구요..

 

그런데 일제시대때 모든 전통무술을 배우는것과 시합하는것을 금지시키고 덕분에 전통무술이 씨가 마를 지경이 되었는데 그나마 , 해방후에 간신히 명맥을 이어갔슴다..

 

그런데 박정희가 태권도를 올림픽 종목 으로 만들려고 한 다음부터 전통무술이 또 한번 위기를겪고 거의사라집니다..

 

즉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있는 유도 태권도만 빼고는 나머지는 찬밥이 됩니다.. 

 

70년대 중반까지도 도장도 많았고 그 당시에는홍보 포스터도 붙이고 그랬는데 80년대들어서 모두없어졌슴다..

 

그런데 90년대들어 조금씩 살아나더라구요. 즉 명맥이 아예 끊긴건 아니었슴다.. 

 

태권도는 독립군 대장 이었던 최홍희란 사람이 독립군들의 무술로 보급하기 위해서 만든겁니다. 그니까 역사는 길지않죠.. 

 

단 전쟁무술이다보니 좀 거칠고 실전적이죠..

 

그런데 최홍희 본인도 가라데를  배운적이 있슴다. 워낙에 무술에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다양하게 수련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양반이 이승만때 월북을 해버립니다. 이승만이 태권도보급에 전혀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한국 태권도 역사에서 지워지죠, 반면 북한에서는 정부차원의 지원을 받아서 국제 태권도연맹(ITF) 총재가되서 해외에도보급을하고요..지금은 고인이됬지만..

 

최홍희가 월북한 뒤에 당수, 공수, 결국은 가라데배운사람들인데 이런단어가 전부 태권도로 통합됩니다..

 

그래서 현재의 태권도는 가라데의 영향을 아주많이 받은건 사실임다..

 

그리고 가라데 역시 일본에서도 당수라고 부르기도했는데 원래 이게 중국의 남파권술이거든요..

 

그래서 오끼나와 지방에서 가까운 복건성으로 유학도 많이갔어요..

 

오끼나와는 류쿠로 일본정부로부터 차별을 받는 바람에 에도시대 부터 검을 가지지 못하게 했슴다..

 

그래서 권법이 발달한거죠..

 

거기다 일본에서 차별받는  오끼나와 무술이라 늘 비주류 대접을 받았슴다..

 

 그런데 가라데를 유도나 검도같은 주류무술로 만든 인물이 최배달이란 사람임다..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데다 120개국에 도장을 내고 제자들이 있으니 어쩔수 없지요..

 

그래서 일본의 청소년들이 뽑은 20세기 일본의 위인 10명에 들어갔슴다..

 

근데 그 당시에 일본 정부의 간곡한 부탁으로 일본국적으로 바꿔줬죠..

 

그니까 죽기직전에 일본의 부탁을 들어준거죠 그때쯤이면 이양반이 도가 터서 해탈의 경지에 들어섰을 때니까요..

 

 

 

 

출처 : 한류열풍 사랑
글쓴이 : kei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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