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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나라 회(膾)의 역사

lionet 2014. 11. 24. 13:05

 

 

 

 우리나라 회(膾)의 역사

 

조선 광해군(光海君) 때, 유몽인(柳夢寅)의 저서 ' 어우야담(於于野談) '을 보면,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사 10만 명이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주둔하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회(膾)를 먹는 것을 보고 대단히 비아냥거리고 더럽게 여겼으며, 오랑케의 습관이라고 비웃었다.   

 

그 모습을 본 우리나라 선비가 논어(論語)에 보면 회는 가늘게 썬 것이 좋다고 하였고, 생선회나 육류를 썰어서 회를 만들었다고 하였으며, 공자(孔子)도 회를 좋아 하였는데, 왜 그러냐고 반박을 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또 선조(宣祖) 때 이수광(李수광)의 '지봉유설(지봉유설)'에도 중국인은 회를 먹지 않는다며 조선사람이 회를 먹는 것을 보고 기이(奇異)하게 여겼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이상세계를 염원하였으므로 살생(殺生)을 함부로 하지 않는 종교적 영향으로 회를 즐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사실은 아래 언급하는 이규보(李奎報)와 목은 이색(牧隱李穡)의 시(詩)를 볼 때 널리 회를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숭유사상(崇儒思想)을 국시(國是)로 삼았으므로 ' 회는 가늘어야 한다. 공자(孔子)가 회를 즐겨 먹었다 . 논어 향당편 '는 사실에 아무런 저함감 없이 회를 본격적으로 먹었던 것이다. 

 

야사적(野史的)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신돈(辛旽)이 지렁이 회를 해먹었다는 부분이 있고, 그 후 조선 세조(世祖) 때에, 세조의 여러 신하들이 모여 자기가 가장 즐거운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권호'라는 사람은 물고기를 잡아서 천엽을 만들어 겨자장에 찍어 먹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했다는 기록도 있다.

 

 

생선회는 일본 음식인가 ?

 

한국인도 일본인 못지않게 회(膾))를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생선회는 일본이 원조로 우리가 '회'를 즐겨 먹는 것은 일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이 회를 본격적으로 먹은 시기는 근세(近世) 이후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회를  즐겨 먹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소한 고려(高麗) 중기 이전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이전에는 남겨진 기록(記錄)이 없기 때문에 검증을 할 수 없어 고려 중엽 이전으로 보는 것일 뿐이다. 물고기를 날로 먹는 회(膾) 문화는 시기적으로 중국(中國)이 가장 빠르고 다음이 우리나라이며, 일본(日本)은 한참 후에야 요리로써 생선회를 먹었다.  

 

현존하는 문헌 중 생선회에 관한 첫 기록은 고려 중기의 학자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보인다. 여기에 회(膾)를 주제로 쓴 시(詩)가 여러 편 실려 있다. 이규보(李奎報)는 회를 무척 좋아하였던 듯하다.


                                  붉은 생선으로 회를 쳐서

                      반 병 술 기울이니 벌써 취해 쓰러지네         

                      어부가 하는 말이

                      술 있으면 안주 투정을 어찌하리

                      여울에 있는 고기를 잡아 회를 치면 된다 하네

 

이규보(李奎報)와 같은 시기에 중국 송(宋)나라에서도 생선회가 유행을 하였다. 소동파(蘇東坡), 육유(陸游) 같은 시인들이 생선회를 주제로 많은 시(詩)를 남겼으니, 고려와 송나라는 동일한 시대에 생선회를 즐겼던 것이다. 일본(日本) 문헌(文獻)에 생선회인 '사시미'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1399년보다 최소 150년 이상 앞선 시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선회를 노래한 시(詩)와 문장은 조선말기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너무 많아 일일이 소개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니 한국인들은 적어도 고려(高麗) 무렵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생선회를 즐겨 먹은 것으로 보인다.   

 

생선회에 관련된 기록을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를 중심으로 보면, 고려 말의 충신 '목은 이색(牧隱 李穡)'은 ' 좋은 고기 잡아 눈발처럼 잘게 회 치고, 막걸리 불러와 거나하게 취했네 '라고 노래하였다. 요즘처럼 회에는 반드시 술 한잔을 곁들이는 것이 풍류(風流)이었다. 조선 초기의 학자인 서거정(徐居正)은 그의 저서 '동문선(東文選)'에서, ' 흰 막걸리와 붉은 회가 꿈에도 그립구나. 잠방이 차림으로 물에 텀벙, 그물을 드니 퍼덕이는 은빛 비늘. 비늘 떼고 회로 저며 수초로 양념한다 '고 하였다.  그는 또 '붕어회'라는 제목의 시(詩)에서  ' 서리 내린 차가운 강 붕어가 통통 살쪄 /  칼 휘두르니 하얀 살점 실처럼 흩날리네  / 젓가락 놓을 줄 몰라라  /  접시가 이내 텅 비었네 '라고 노래하였다.

 

  

계속해서 이항복, 허균, 정약용 등 조선 중기와 후기의 문인(文人)들이 생선회를 노래한 시(詩)가 이어지는데 급기야 숙종(肅宗) 때 실학자 홍만선(洪萬選)은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 회를 먹고 소화가 되지 않을 때에는 생강즙 한 되를 먹으면 바로 소화가 된다고 치료법까지 적어 놓았다. 사람들이 체할 정도로 회를 많이 먹었다는 증거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생선회를 좋아하는 이유는 일본(日本)의 영향을 받아서가 아니라 우리의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음식 습관과 음식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산림경제   山林經濟

조선 숙종 때의 실학자 홍만선(洪萬選)이 엮은 농서(農書) 겸 가정생활서이다. 그 주요 내용은 복거(卜居 .. 주택의 선정과 건축), 섭생(攝生 .. 건강), 치농(治農 .. 곡식, 목화 기타 특용작물의 경작법), 치포(治圃 .. 채소류와 화초류, 담배 약초류의 재배법), 종수(種樹 .. 과수와 임목의 육성), 양화(養花 .. 화초,화목, 정원수의 가꿈), 양잠(양蠶), 목양(牧養 .. 가축, 가금 및 물고기의 양식), 치선(治膳 ..식품의 저장 조리 가공법), 구급(救急 ..150가지 응급처리법), 구황(救荒 .. 흉년에 대비하는 비상조치법), 벽돈(僻瘟 .. 전염병을 물리치는 법), 벽충법(僻蟲法 .. 해충, 쥐, 뱀 등을 물리치는 법), 치약(治藥 .. 약의 조제, 복약 금기 등을 논함), 선택(選擇 .. 길,흉일과 방향의 선택), 잡방(雜方 .. 그림, 글씨 등과 도자기, 악기, 장검등을 손질하는 방법) 등 16개 항목에 걸쳐서 논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생선회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근거는 17세기 초, 조선 숙종(肅宗) 때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이 지은 산림경제(山林經濟)에 나온다. 물론 위에 적은 대로 고려 중엽부터 당대의 문호 이규보(李奎報), 목은 이색(牧隱 李穡)의 여러 시(詩)들에서 우리의 회(膾) 문화를 짐작할 수 있지만, 홍만선의 '산림경제'는 회(膾)의 요리법, 심지어는 회를 많이 먹어서 체했을 경우 그 치료법까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생선의 껍질을 벗기고 살을 얇게 썰어 얇은 천으로 물기를 닦아낸 다음 생강이나 파를 회 접시 위에 올려 곁들여 먹고, 양념으로 겨자를 쓴다. 여름에는 얼음 위에 올려 먹는다 ..고 기록되어 있는데, 생선회 문화가 오늘날과 다름 없을 정도로 발달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시미 ..이름의 유래

사시미(刺身)라는 단어는 우리도 자주 사용하는 일본말이니 별다른 거부감은 없지만, 한자(漢字)로 풀어서 보면 느낌이 확 달라진다. 생선회라는 의미는 보이지 않고 , 즉 자신(刺身)은 ' 칼로 긋는다 ' 또는 '몸을 베다 '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무라이 칼날 처럼 섬뜩하고 잔인한 느낌마저 들고 있다.

 

 

회를 의미하는 단어를 한중일 삼국의 언어로 보면 우리말은 '회'이니 한자의 뜻에 최대한 가깝고, 중국어는 회(膾)라는 글자도 쓰지만, 구어체로는 어편(魚片 ..위피엔)이라고 하는데 물고기를 썰어놓은 조각이라는 뜻이니 바로 생선회라는 것을 알 수있다.

 

 

그런데 일본말에서는 밑도 끝도 없이 생선회를 놓고 몸을 찌른다, 칼로 긋는다는 표현을 한다.. 사시미의 한자 표기는 자신(刺身 .. 찌를 자, 몸신) 인데, 하여튼 쉽게 이해하기 힘든 작명이다. 일본말에서 생선을 썰었다는 의미에 최대한가깝게 표현하려면, 자르다 또는 저미다 라는 뜻의 '절(切)'자를 사용하여 절신(切身)이라고 즉, '기리미'라고 읽어야 한다. 여기서 '신(身)'은 즉, '미'는 사람의 몸이 아니라 고기 혹은 맛이라는 의미이다.

 

 

생선회는 살을 자르는 것이니 '기리미'라고 해야 하는데 굳이 찌른다는 '사시미'로 표현한 것에는 까닭이 있다. 일본의 어원사전(語源辭典)에서는 두 가지로 유래를 설명한다. 하나는 생선을 회로 뜨면(切), 전문가가 아닌 이상에는 그 회가 어떤 생선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요리할 때 생선 꼬리와 지느러미를 자른 후 꼬챙이에 찔러(刺) 손님들에게 어떤 생선으로 회를 떴는지를 보여 준 것에서 '사시미'라는 말을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무라이는 자르다라는 말을 금기시하기 때문에 찌른다라는 표현을 한 것이 사시미의 유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합집산(離合集散)과 하극상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배신과 음모의 세상이었다.  사무라이 사회에서는 자르다, 칼ㄹ로 베다, 라는 뜻의 '기루(切)'라는 단어의 사용을 금깃하였는데 등에다 칼을 꽂다, 배신하다 라는 의미의 '우라기루'라는말이 연상되기 때문이었다.

 

생선회와 사시미의 차이

 

우리나라의 생선회와 일본의 '사시미'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같은 횟감이라도 우리는 살아서 펄떡펄떡 뛰는 물고기를 즉석에서 회를 쳐서 먹는 활어회(活魚膾)를 좋아한다. 또 회를 먹을 때도 씹히는 맛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회는 값이 비싸다. 물류비 등등 

 

반면 일본 생선회인 사시미는 횟감으로 생선을 잡은 후 어느정도 시간이 흘러야 가장 좋은 맛이 나온다고 한다. 회를 먹을 때 우리처럼 씹히는 맛을 강조하기 보다는 혀에 느껴지는 감촉과 맛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생선회 먹는 습관과 일본의 사시미 먹는 방법의 차이는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생선회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위에 적은대로 고려와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지금 우리가 회 먹는 것과 같은 방법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는데, 일본의 사시미 먹는 법과는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

 

 


자료 더보기

출처 : 한산이씨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들
글쓴이 : 기라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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