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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의 대표음식, 불고기의 기원과 역사

lionet 2010. 11. 4. 10:52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뭐가 있을까? 대표적인 음식을 들자면 김치, 불고기, 비빔밥 등이 있다.

불고기, 김치, 비빔밥은 세계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한식 세계화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음식인 불고기는 그 맛이 매우 기가 막혀 외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의 불고기

 

얼마전 소녀시대의 멤버 제시카가 좋아하는 일본음식을 야키니쿠라고 했다가 네티즌들에게 쓴 소리를 받았다.일본의 야키니쿠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들이 불고기를 먹었는데 바로 야키니꾸는 이 불고기에서 유래한 음식이라며 일본 고유의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튼 난 야키니쿠의 기원을 말하려는게 아니다. 바로 우리 한국사람들이 즐겨먹는 불고기의 기원을 말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임을 밝힌다.

 

 

일본의 야키니쿠

 

1. 불고기의 원조, 맥적(貊炙)

 

불에다 구운 고기를 한자로 적(炙)이라 쓴다. 炙이란 글자를 보면 불(火) 위에 고기(肉)가 올려있는 모양이다. 한나라 때 사전인 『석명』에는 炙은 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이 『석명』에 맥적(貊炙)이라는 고기를 굽는 법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다. 고기 전체를 통째로 구워서 먹을 때 각자 칼로 잘라 먹는다고 풀이하면서 북방의 맥족(貊族) 음식이라고 했다. 불위에 고기를 올려놓고 굽는 단순한 조리법과 차별을 둔 것으로 오늘날로치면 바베큐 통구이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맥적을 즐겨먹은 맥족은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무대로 활동하던 종족으로, 부여와 고구려의 구성원이었다. 貊은 전설에 나오는 동물로 몸은 곰을 닮았고 코는 코끼리, 꼬리는 소, 발은 호랑이를 닮았다고 한다.

 

맥족은 우리의 선조였다. 그렇기에 최남선은 『조선상식』에서 맥적은 고구려 특유의 고기 굽는 방식이었다고 말한다.

 

 

바베큐, 아마 고구려의 맥적도 이와 같이 구웠을 것이다

 

커다란 고기를 통째로 굽는다는 것, 그것도 골고루 굽는다는 건 옛날에는 상당히 까다로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맥적은 고대 수렵민족의 특징이 잘 반영된 음식이다. 민족의 특성에 따라 고기를 먹는 방식이 다르다고 한다. 가령 유목민족은 맹물에 고기를 넣고 백숙으로 삶아 먹고, 농경민족은 소량의 고기를 양념에 재서 먹는다고 한다.

 

이 맥적은 고구려 때 한층 업그레이드 된다. 고구려에서는 소, 돼지 등의 고기에 고구려인들이 특별 개발한 양념장에 고기를 재워 두었다가 마늘, 부추를 섞어 발라 통채로 꼬챙이에 꿰어 불에 구워 먹었다. 고기에 장을 발라 양념 맛이 스며들게 한 후 구워 먹는다는 점에서 세계 최초의 양념 통불고기라 할 수 있다. 고구려의 맥적은 그 맛이 특출해서 중국에서 고급요리로 인정했고, 고구려의 맥적을 먹기를 소원했다고 한다.

 

진나라 사람 간보가 쓴 수신기라는 소설을 보면 중원의 귀족과 부자들이 이민족 풍습인 호상맥반(胡床貊槃:호상은 강족이 사용하던 식탁이고 맥반은 맥족의 그릇)을 사용하고 강자맥적(姜煮貊炙:강자는 양고기 백숙)을 즐겨먹는다고 쓰여 있다. 이 기록을 통해 4세기 중국에 우리 선조가 만든 맥적이 크게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2. 눈 오는 밤 먹는 설야멱(雪夜覓)

 

고기를 통째로 구워먹던 고대 바베큐 요리인 맥적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리기구 및 조리방법이 다양해지자 숯불구이로 발전한다.

 

신라에서는 새해 첫날 임금과 신하들이 모여 소고기를 구워먹는 풍속이 있었다. 조선후기 학자인 조수삼이 쓴 『추재집』에 신라에서는 설날이면 단향회(檀香會)를 열고 불을 피워 떡국을 끓이며 설야멱(雪夜覓)을 먹었다고 한다. 설야멱에 대해 대나무 꼬챙이에 소고기를 꽂아 구워먹는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일제강점기 때 발행된 조선 풍속서인 『해동죽지』에는 설리적(雪裏炙)이라는 숯불구이가 나오는데 고려의 수도인 개경의 명물이라 했다. 설리적은 소의 갈비 혹은 염통을 기름, 마늘 등과 함께 굽는데 반쯤 익히면 물에 담갔다가 센 불에 다시 구워서 익혀 먹는다고 한다.

 

이상의 기록을 종합해보면 신라 때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설야멱 혹은 설리적이라는 숯불구이를 먹었던 것이다.

 

 

 

 

설야멱은 눈 오늘 날 밤에 숯불에다 고기를 구워먹었다는 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말로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설야멱을 풀이하면 '눈(雪)오는 밤(夜)에 찾는다(覓)'는 뜻으로 중국 송나라 역사서인 『송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설리적은 눈(雪)속(裏)에서 굽는다(炙)는 뜻으로, 송나라를 건국한 조광윤이 친구이자 신하인 조보와 눈 속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는 고사의 내용을 풀이한 것이다.

송 태조 조광윤이 먹은 설야멱이 중국에서 유행했다는 맥적처럼 고려의 숯불구이 였는지 중국 고유의 숯불구이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송나라를 이은 원나라 때도 숯불구이 불고기가 크게 유행을했는데, 여기에는 고려의 영향이 크다.

원은 고려로부터 소고기를 수입해 가는 것은 물론이고, 숯불에 고기를 굽는 요리사까지 데려갔다. 최남선은 『조선상식』에는 고려 임금이 원나라로 장가를 들기 시작한 이후부터 탐라의 소고기까지 함께 딸려서 보냈다고 쓰여있다.

 

 

설야멱(=설리적, 설하멱적)

 

3. 한국불고기의 발전 역사

 

17세기 조선 숙종 때 학자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에는 우리나라 숯불구이의 특징을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홍만선은 『산림경제』에서 숯불구이를 설하멱적(雪下覓炙)이라 표현했다. 소고기를 편편하게 잘라 칼 등으로 찧어 부드럽게 만든 후 꼬챙이에 꿰어 기름소금에 재었다가 기름이 충분히 배어들면 은근한 불에 굽는다고 했다. 고기를 구울 때 물에 담갔다가 빼면서 굽기를 세 번 반복하는데, 이렇게 구우면 고기 맛이 부드럽고 맛이 좋다고 적었다.

 

홍만선이 적어놓은 고기 굽는 법과 기름소금이라는 양념장이 중국의 고기구이와 확연히 달랐기 때문에 고구려의 맥적과 고려의 숯불구이가 중국에 이름을 떨쳤고, 고려의 요리사가 중국 원나라까지 진출한 것은 아니었을까?

 

순조 때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에는 예전에는 첨자(簽子) 즉 대나무 꼬챙이에 고기를 꿰어서 구웠는데, 지금은 철망을 쓰니까 꼬챙이가 필요없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통해 순조 시기에 오늘날처럼 고기를 구울 때 석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순조 때 석쇠를 사용해 고기를 구웠을까? 어느 시기에 석쇠를 사용해 고기를 구웠는지, 언제 석쇠가 발명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옛 문헌에서 석쇠가 주로 보이기 시작하는 시점은 조선 중종과 선조 무렵이다. 조선 중기 이후 꼬치구이 대신 석쇠에 고기를 굽는 현재의 광양 불고기와 같은 조리법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광양불고기

 

현재의 불고기는 전골이라는 조리기구가 만들어진 후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포졸들이 쓰고 다니는 벙거지를 엎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전골이라는 조리기구는 순조 시기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전골의  발명으로 국물이 많고 야채가 강조되는 전골과 육즙 중심의 국물이 적고 고기가 강조되는 불고기로 나누어 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리 한다면, 맥적에서 비롯된 우리의 고기 굽는 방법이 신라, 고려 때는 설야멱이라는 숯불 꼬치구이를 거쳐 철판구이, 석쇠구이, 돌판구이 등으로 발전했고,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조리기구가 만들어지며 국물과 함께 먹는 전골과 불고기로 발전한 것이다.

 

불고기라는 명칭은 1950년대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며, 숯불구이의 종류인 주물럭구이는 1970년대 마포의 한 고깃집에서 개발해 사용한 용어라 한다.

 

 

 

 

한국인들은 고기를 구워 먹는 걸 좋아한다.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은 기본이다. 기마민족의 후예라 그런지 한국인들에게 숯불구이를 선호하는 유전자가 자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에 피워 즉석 고기구이를 즐기는 우리의 습성은 먹고 살기 좋아진 현대에 생겨난 풍속이 아니라 먼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었다.

 

『필원잡기』를 보면 세종 때 직제학 벼슬을 지낸 김문은 정승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천하 제일의 요리로 화제가 번졌는데, 그는 천하제일의 요리로 우심적(牛心炙), 즉 소고기 숯불구이라 꼽아고, 이에 모든 관리들이 맞는 말이라며 맞장구 치며 즐거워 했다고 나와있다.

 

 

조선시대 고기굽는 그림

 

조선의 선비들은 친한 친구들이 모이면 화로에 숯불을 피워놓고 둘러 앉아 갖은 양념을 한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꼬치에 끼우고, 전골 또는 석쇠에 올려놓고 구워 먹으며 시를 읊고 담소를 나누는 것이 풍류였다.

 

『열하일기』의 저자 박지원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며 풍류를 읊었다.

 

눈 내리는 날에 김술부 공과 함께 화로를 마주하고 고기를 구워먹으며 난로회를 열었는데 방안이 연기로 후끈거리고 파, 마늘, 고기 굽는 냄새가 온 몸에 배었다. 공이 북쪽 창문으로 가서 부채를 부치면서 맑고 시원한 곳이 있으니 신선이 사는 곳이 멀지 않다고 말했다

(난로회 :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10월이 되면 소고기를 기름간장, 달걀, 파, 마늘, 후추가루 등으로 양념해 화로에 구워먹는 풍습이라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기를 구워먹는 풍경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굽는 고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다.  

 

 

 

 

참고문헌

김왕기, 『우리는 무얼 먹고 살았을까』, 청솔, 2004

윤덕노, 『장모님은 왜 씨암탉을 잡아주실까』, 청보리, 2010 







 

 

 

 

 

 




 

 

 

출처 : 한류열풍 사랑
글쓴이 : 호루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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