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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본 고대사의 비밀 (2)

lionet 2012. 5. 20. 20:43

日 고대사의 비밀 2-일본 고대어에 한국 사투리가

日 고대사 미스터리 (2)

일본인이 못 푼 고대 시가 ‘만엽집’ 한국 학자가 풀었다 

 

 

일본 문화와 언어의 왜래유입설을 입증하는 보다 더 구체적인 증거 자료도 있다. 일본 고대 4대 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 ‘고사기(古事記)’ ‘풍토기(風土記)’ ‘만엽집(萬葉集)’ 중 만엽집 이야기다. 

 

만엽집은 7~8세기 일본의 고전 시가집이다. 전 20권에 4천 5백 16수가 실렸는데 내용은 일본인의 남녀상열지사를 담은 연애시가 주류다. 

 

일본 고어로 씌어진 만엽집의 번역은 난해하기로 소문났었다. 제대로 번역한 책이 없다는 정도가 아니라 타국어를 또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한 이상으로 문장 얼개가 맞지 않아 일본어 학자도 만엽집은 다빈치코드 풀기보다 어렵다고 평했다.

  

그런데 이 만엽집을 신라 이두와 전라도 경상도 이북 방언으로 쉽게 풀어버린 언론인이 있다. 아동문학가이자 한국일보 기자, 11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현재 포스코 인재개발원 교수로 재직 중인 이영희(79) 선생이다. 

 

이 선생은 1993년 5월~이듬해 7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노래하는 역사‘를 책으로 펴냈는데 일본 학자는 대대로 풀지못한 고대사의 미스터리를 불과 수 년 만에 풀어버려 일본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현재 절판된 ‘노래하는 역사’는 ‘만엽집’과 ‘일본서기’를 우리 고어와 비교해 풀이하고 이를 통해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한.일 고대교류사의 진실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만엽집 일본어 번역본과 이영희 선생이 ‘노래하는 역사’에서 번역해놓은 시가를 보면 이렇다.

 

<’만엽집’ 12권의 2991 가사>

젖이 늘어진

어머니가 치는 누에고치 숨기

숨이 막힐 것도 같아라

그 여자애를 만나지 못해

 

<’노래하는 역사’ 해석>

드리워진 남근 꺼내지

파 박아서 눕히네

미워하지는 마소

 

보소

잇단 곶이(성행위) 아주 거칠어

이 내 여음 불쌍하이

 

강제로 겁탈하지 말라는 남자의 말에 여성이 “나의 여음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댓구시가다. 이영희 선생은 만엽집에는 남녀의 성을 노래한 이면에 정치 비판이 담겼다고 해석한다. 

 

67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천무천왕의 철권통치를 비판한 시가라는 것이다. 이영희 선생은 천무천왕을 연개소문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살수대첩 등으로 당 태종에 대적한 반당노선의 연개소문은 660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십수년 후 연개소문은 고구려와 신라계를 연합해 백제계이던 천지천왕을 몰아내고 천무천왕이 되었다.

 

연개소문인 천무천왕 이전의 일본 고대국은 백제 무왕의 아내가 일본으로 건너가 제명여왕(의자왕의 여동생)이 되고, 그녀가 무왕 사이에서 낳은 교기왕자가 천지천왕이 되어 일본을 다스리다가 통치권이 백제에서 고구려 신라계로 넘어간 셈이다. 천무천왕 다음 왕은 일본 역사상 손꼽는 명왕인 문무천왕인데 이영희 선생은 고대사서를 비교해 문무천왕이 신라 문무왕인 김법민이며 그는 곧 연개소문의 아들로 해석해 놓았다.


 

 

 

이영희 선생은 언론사에 재직 중이던 1973년 경주 천마총 천마도 출토 당시 문화부장으로서 한국 고대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함을 통탄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고대사 공부는 자연히 이두문 탐구로 이어졌다. 

 

이후 취재차 들린 일본 이즈모의 어느 신사에서 한국 고대사와 일본 고대사가 한 뿌리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신사의 이름을 공부한대로 이두식으로 해석하니 ‘아라(阿羅)의 무쇠 가는 사나이들의 신사’가 되는지라 절의 주지(神主)에게 “돌기둥에 새겨진 신사 이름의 의미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혹 아라가야 계통의 신을 모신 절이 아닌가” 다시 물으니 “아라는 잘 모르고 물었더니 가야에서 오신 분은 분명하다”는 대답이었다 한다. 

 

이어 “이 신사가 받드는 신체(神體)가 무쇠가 맞느냐”는 질문에 “그걸 어찌 아느냐”는 답을 들은 이후 본격적으로 일본 고대사를 공부했다고 한다. 

 

책에는 이런 사례도 실렸다. 일본은 한자를 훈독과 음독으로 읽는데 훈독이 그리 읽히는 원리를 학자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예컨대 ‘미사사(三朝)’라는 온천이 그렇다고 한다. 이영희 선생이 일본의 미사사의 한 온천장을 들렀을 때 온천장 주인이 ‘삼조’를 왜 미사사로 읽는지 아느냐고 물어왔다는 것. 

 

미사사의 ‘미’는 물의 우리 고어이고 ‘사사’는 ‘솟아’의 고어라고 설명을 해주자 온천장 물이 한번 막힌 적이 있는데 다시 뚫었다며 반색했다고 한다.

 

또 다른 예로 ‘아, 시야 고시야!’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일본어 사전에는 ‘조롱하여 웃는 메김 소리’라고 적어놓고 뜻에 대한 언급은 없는데 이는 ‘아, 시원해라 고소해라’는 우리 옛말이라는 것이다.

 

 


 

아래는 ‘노래하는 역사’의 서문을 포함한 간추린 내용으로 옮긴 글이다. 


1.만엽집, 다빈치 코드 보다 더한…

 

일본 읽기로 작정한 바 있어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이영희의 “노래하는 역사”,2권을 골라잡았다.

“마음”은 “게이샤의 노래”이후 퍽이나 진중하게 다가온 책이어서 후일 그 행간을 아우러기로 하고, 일본의 고전 “만엽집(萬葉集)”에 대한 그야말로 다빈치 코드식의 해석이 이번 한 주 나를 꼴까닥 삼켜버렸다.


아니,다빈치 코드가 다 뭐야? 7세기의 실종된 역사가 고스란히 일본 노래집 속에,것도 한국의 고대어로 찬란하게 숨쉬고 있다니… 감개무량이다.


일본에는 8세기초에 간행된 네가지 고전이 있다. 고대사 책인 ‘일본서기(日本書紀)”고사기(古事記)”풍토기(風土記)”만엽집(萬葉集)’이다.


그런데,거두절미,중언부언없이 한마디로 말해서 8세기에 편찬된 이들 책들은 7세기 요동치는 한국의 정세판도에 따라 가야계, 백제계, 신라계, 고구려계의 왕, 왕족, 귀족 등 엘리트 집단들이 대거 신천지 일본으로 건너가 서로 정권을 다투는 우리 한국인들끼리의 피튀기는 정권 각축전을 담은 역사책이라는 것이다.

 

물론 주류 일본 학자들은 입에 거품물고 반대하지만 애당초 우리말로 읊어진 옛노래들을 10세기 이후의 일본말로  풀려니 판독이 불가, 즉 요령부득(要領不得)이란 말이다.

 

이에 또 일본 사학계의 별칭 “매서운 칼잡이” 고바야시 야스코 여사가 집필한 여러책에서의 충격적인 학설은 고스란히 저자의 만엽집 해석과 일맥상통하니, 그를 풀어나가는 재미가 어찌 다빈치 코드 풀기에 비길까? 하~~!!!

 

 

조선통신사 행렬 두루마리의 일부분. (나가사키현 지정 문화재)

 

2.한국 사투리가 곳곳에...

 

여기서,잠깐 향찰,이두문자에 대해 언급하고 만엽집의 충격적 근간 몇가지만 소개하려 한다.

손꼽을라치면 열이 모자라고 이 밤을 다새도 부족할 정도의 방대한 양이며 무시무시하도록 재미있는 역사캐기이니까.

 

한글은 15세기에 지은 글이고.한글창제전  한자의 새김과 소리를 활용하여 우리말로 표기한 향찰,즉 이두라는쓰기 방법에 대해선 익히 알고있는 터, 신라시대의 설총이 고안한 것으로 배워 왔으나  그보다 훨씬 전부터 쓰여오고 있었으며 백제,고구려,신라의 표기법이 조금씩 달랐다 한다.

 

일본에 한자가 전래된 것은 국사시간에 외운대로 ‘일본서기’책에도 백제의  왕인박사가 일본태자에게 처음 가르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백제 17대 아신왕,405년)

 

이보다 앞서 백제의 여러 지식인,기술자들이 잇달아 일본행을 하였는데 이 시기가 바로 우리의 쥬신 고구려 광개토 대왕이 백제 58성을 함락(396년)하였던 때다.

 

만엽집 노래가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전반의 것인데 한자와 약 2백 50년의 시차가 생기고 백제식 음과 훈은 상당히 일본화 되었던바,이런 상태의 한자 독법을 활용하여 이두식으로 쓴 노래가 만엽집이며 오늘날의 일본식 한자 독법과 우리나라식 독법을 섞어서 읽으면 판독불능의 숱한 노래들이 술술 풀려진다고 한다.

 

백제계는 전라도 사투리로, 신라계는 경상도 사투리로, 고구려계는 평안도 사투리로, 심지어 제주도 사투리까지… 

이러한 사정이니 고대 한국어를 모르는 일본학자들이 10세기이후의 일본말로 풀어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천무천왕이 된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


3.일본사 태풍의 눈,천무왕과 문무왕…

 

1.천무왕

 

일본에서 672년 임신(壬申)의 난,쿠데타로 기존 백제계 왕인 천지왕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천무왕의 정체는? 바로 연개소문이다.

 

삼국사기에 연개소문의 사망시기는 666년(당나라 문헌과도 일치)으로 기술되어 있으나 죽은 연유에 대해서는 기록이 全無하다. 그러나 일본서기에는 664년 10월로 그 사망소식 기록과 삼형제에 남긴 유언장까지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사서에 남의 나라 대신의 유언장까지 기록한 예로서  몹시 이례적이다. 야스코씨와 저자의 의견인즉,천무는 664년 나당연합군에 밀려 실각하고 일본으로 망명한 고구려 막리지 연개소문이란 것이다.

 

만엽집 가사를 풀어본 즉슨, 곳곳에 천지와 천무,즉 백제왕자 교기와 막리지 연개소문의  정권쟁탈 노래가 넘쳐난단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일본서기와 고사기를 편찬한 천무왕은 정권찬탈 후 그 정당화를 위해서 이 사서를 편찬한 것이니까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진다.

 

2.문무왕

 

신라의  문무왕이 일본의 문무왕이란 사실.

신라 문무왕은 누구인가? 김춘추,즉 태종무열왕과 김유신 장군의 누이 문희 사이에 난 장자로서 신라 30대 왕이다.

그런데 아명(兒名)이 법민인 문무왕은 어쩐지 아버지처럼 친당파(親唐派)가 아니었고 당나라에 항거하기까지 했다. 이에 당은 둘째아들 인문을 신라왕으로 명하고 대대적인 신라 침공을 한다.

 

그래서문무왕은 아들 신문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죽은 것처럼 꾸며 일본으로 망명하고 신라에서 죽은지 16년후 일본에서 다시 문무왕이 된다.

 

문무왕의 수중릉이라는 대왕암도 조사한바로 능의 흔적은 없다하고 일본으로 망명할 때 발원지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다.

 

여기서 야스코 여사가 주장하는 깜짝놀랄만한 설이 있다. 

문무왕은 김춘추의 아들이 아니라 연개소문의 아들이라는 것. 얼마전 사극 ‘연개소문’방영시에도 어릴적 연개소문이 부모를 떠나 주유하며 험한 생활을 할때 신라 김유신 집에서 하인처럼 머물며 문희와 사랑하고 도주하는 대목이 있었다. 물론 불발로 끝났지만…

 

혼전임신한 문희를 태워죽이겠다는 시츄에이션으로 연기를 피우며 선덕여왕에게 읍소한, 더우기 그 이전에 김춘추를  공놀이로 유인하여 옷고름을 찢어가며 동생과 얽히게 한 지략가 김유신이 바로 연개소문의 아이를 가진 문희 때문에 발빠르게 모사를 꾸민것일수도  있다는 얘기인데…

 

어쨌거나 이 가설은 두 사람의 생년시차를 더 견고히 맞추어야 할 숙제가 있는 모양이다.

 

신라의 문무왕이 일본의 문무왕이란 증거는 도처에 나타난다.

 

일본사서에 문무왕은 15세에  즉위하고 25세에  요절한 왕으로 나오는데 업적면에서는 명군(名君)중의 명군이다.국호를 일본으로 정하고 율령을 정비하고  사,농,공,상 모든 면에서 획기적인 문화적 진보를 거듭한다.

 

생년월일과  어디에서 나타났는지조차 기록이 전무한 어린 문무왕이 그 짧은 제위기간 동안 신라에 견줄 엄청난 문화적 업그레이드 정치를  한 셈이다.여기에 만엽집의 노래를 풀어보면 그가 신라의 문무왕이라는 증거가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엮여나온다.

 

 

일본 국조 아마테라스

 

4.핫키요이! 그리고 다가 다가 다가라!

 

신라의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와 여신 아마테라스,즉 히미코 여왕의 상관관계, 

법륭사의 수수께끼,신라의 한가위와 일본의 가가히,아스카의 유래,고대의 카니발 동맹과 간나즈키,’가루’라는 이름의 가야계 왕들,동시대 풍속화가 김홍도와 동주제 사락,고구려의 씨름과 일본의 스모..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스모에 나타난 재밌는 고구려의 흔적을 한번 보면 스모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 있다.

 

“핫키요이“다.

 

또 심판이라는 교지가 신경전을 벌이는 역사둘레를 맴돌며 

 

“다가! 다가 다가라 다가 다가라..”

“노콧다.노콧다.” 이런 매김을 한다는데…

 

억지로 해석해도 뜻이 통하지 않고 그냥 아자, 얼씨구 하는 고대 추임새 정도로 알고 있는 정도라는데… 고구려 각저총(씨름무덤)에 일본스모와 거의 똑같은 벽화가 나온다.

 

위의 요령부득한 말들을 평안도 사투리로 풀어보면.

 

“하기요.(시작하기요)”

 

빙빙돌지 말고

 

“다가서 다가가라.다가가…”

 

“넘구다(넘겨라, 경상도 사투리로는 넘콰라 또는 넘과라).”

 

이러니 어찌 일본말로든 한자로든  뜻이나  음이 풀리겠는가? 

 

5.물테의 법칙

 

이런 어마어마한 우리 고대사가 숨어있는 일본사서에 대한 연구가 널리 세간에 퍼지지 못한 이유가 뭘까?신문사 논설위원과 국회의원과 여성문학인회 회장까지 역임한 저자가 정통 사학자가 아니라서?

아니면 한일 양국간의 너무나 뜨거운 감자이기에?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으로 해마다 속끓이는 우리는 이 귀중한 자료를 왜 국가적 차원으로 연구하고 집대성하지 않는 것일까? 인구에 널리 회자되지 않았고, 수면 위로 부상하지 않은 채 부글거리기에 여기서 나는 또 다빈치 코드식의 암호를 발견하고 싶어진다.

 

풀려는 자와 숨기려고 하는 자….

 

거의 답이 나와 있는 이 수수께끼에 저자가 역설한 물테의 법칙을 옮기며 

장황한 글의 끝을  맺을까 한다.

 

“연못에 돌멩이를 하나 던져보자.돌이 떨어진 자리에 작은 물 동그라미가 인다.

동그라미는 잇따라 여러개로 늘어나 차츰 커지며 연못 가득 번진다. 

이것을 물테, 파문이라 하는데 

떨어진 둘레에서는 벌써 사라졌어도 멀리 번져간 물테는 오래도록 남는다.

문화도 이런 식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문화도 흔히 전해준 쪽보다 받은 쪽에서

원래의 모습을 오래도록 고스란히 간직한다는 것이다.”

 

 

뱀의 다리

만엽집 가사에 자주 나온 고대 일본어에 ‘측량하다, 무게를 재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동사 하까루(はかる)가 있다. 명사는 하까리(はかり). 그런데 고대 일본어에서는 원음이 바가리(ばがり)였다. 이 바가리는 오늘날 우리가 비속어로 쓰는 ‘박으리(빠구리)’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말을 1300년 전에도 같은 뜻으로 쓴게 된다.

 

참으로 핏줄, 역사, 문화가 유구하다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단어다.

 

http://blog.donga.com/sjdhksk/archives/12596

출처 : 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 : 心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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